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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풍경의 분별_포토에세이, 이야기가 있는 숲길

by 나무에게 2013. 12. 24.

 

 

 

혜화역 4호선에서 2005년 1월 10일부터 16일까지 전시되고 있는,

포토에세이, 이야기가 있는 숲길의 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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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이 풍경이 될 때 비로소 분별이 된다.

낯선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바람이 몹시 차다. 옷 사이로 낯선 기운이 차가워져 있다. 바람의 일부가 빠져나갔다 되돌아오곤 한다. 양손을 모아 뒷짐을 지고는 잔뜩 바라본다. 어설픈 숲길의 산책이다. 풍경이 있어 당돌한 산책이다. 당돌한 산책 앞에 숲길의 풍경이 펼쳐 있다. 잎 떨어진 감나무는 장렬하다. 숲길에서 다소곳이 나앉은 나무들은 가슴이 큼직하다. 단정하고 곧게 자란 감나무의 껍질은 파란만장하여 주름살이 그득하다.

발걸음 멈추는 곳에 눈길 닿는 곳이 있다. 가을 숲길의 풍경은 유화처럼 덧칠되어 있다. 잘못 그려진 곳에 덧칠로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수직으로 하늘을 향해 내갈겨진 성난 붓의 모습이기도 하다. 나무 줄기와 우듬지 끝자락, 여리고 가느다란 가지 사이로 감은 빛나고 맑다. 그동안에도 까치밥은 사방을 향해 있다. 까치에게 나는 작은 티끌 같은 미물일 것이다. 까치가 바라보는 것은 모양과 질량과 부피를 가졌다.

까치가 은은하게 저녁노을로 흩어지고 있다. 지는 해는 잔잔한 낙엽활엽수의 잔가지들을 돋보이게 한다. 나무 둥치나 굵은 줄기와 가지를 더 진하게 하고 가늘고 여린 작은 가지들을 부드럽게 한다. 작은 가지들은 선이 아니라 총총히 모여 면이 된다. 그 면의 배경으로 꿈결같이 까치밥이 달려 있다. 나무 둥치와 굵은 줄기와 가지가 진하게 앞에 있고 그 뒤로 가느다란 가지들이 꿈결같이 만들어내는 감이 매달려 있다.

숲길의 중앙은 사색에 젖어 있고 숲길 양쪽 초입의 길은 단풍에 젖어 있다. 깨달음이 몸 곳곳에 유효 적절히 스민다. 세포에 각인되고 있다. 풍경이란 무엇인가. 내 안에 없는 낯선 모습들, 그래서 나를 심하게 요동시키는 것들이다. 어쩌면 풍경이란 내가 힘들고 지쳤을 때 불쑥 튀어나오는 낯선 친구와 같다. 돌발적인 것들에서 풍경은 일상적인 삶에 팽팽한 긴장을 주도록 하는 것이다. 풍경이 풍경이 될 때 이미 낯설어져 있음이다. 풍경이 풍경이 될 때 비로소 분별이 된다. 낯설어진다. 낯선 것은 새롭다. 그래서 풍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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