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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핀오크와의 결별01-조경수 생산 재배 유통 일기

by 나무에게 2013. 12. 24.

1994년 여주자영농고에 근무하던 나는 큰 변화를 시도한다. 당시 조경수를 생산 관리하던 곳(이하 조경포)에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생각을 바꾼다. 당시 조경포는 지금의 농도원체육관 옆 전문학교 구기숙사 자리였다. 전임자들이 만들어 놓은 오밀조밀한 착하고 순진하고 예쁜 묘목과 나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쩌면 담당선생님들의 개인적 취향과 나무에 대한 애정과 특기가 사람이 바뀌면서 심어지고 옮겨지고 조금씩은 식목일 전후하여 일반인들에게 팔려나갔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이러한 조경포의 굳건한 스타일에 변화를 시도하려는 것은 당시 모든 실포장에 경영마인드를 도입하라는 지속된 요구를 조경 분야에서도 적용하여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조경수 생산만으로도 분명 돈을 벌 수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싶었던 열정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철저하게 그동안 해왔던 조경수 개발 과정을 뒤돌아 보았다. 이천에서 시작했던 자생수목 개발의 문제는 없는가를 진단하기 시작했다. 오대산에서 층층나무, 황벽나무 종자를 따다가 파종하였고, 광릉수목원에서 복자기나무 종자를 주워서 파종하였다. 서울대학교 관악수목원에서 참느릅나무 종자를 주워 파종했고, 수없이 많은 수종으로 포장을 꾸려갔다. 나중에 여주로 옮기면서 그 나무들은 특정인에게 팔리고, 그 특정인은 그 나무를 과수원자리를 비우고 길러 거의 모든 나무를 적절한 가격에 알맞은 시류에 맞추어 판매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 중 일부가 그 분이 근무하던 경기도 교육연구원에 식재되어 집에서 가까운 나는 오가면서 내가 기른 나무가 시집와 살고 있는 것을 남모를 애정으로 감동을 심은 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 나무는 복자기나무이다.

아무튼 그러한 자생수목의 개발에는 가장 큰 문제가 종자의 획득이었다. 그리고 내가 새롭게 시작하려는 여주는 면적이 매우 큰 곳이다. 결국 그동안 많은 세월을 거치면서 꾸며진 조경포의 모든 나무를 옮겨 심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핀오크(대왕참나무)를 전체 파종하기로 결정했다. 기존 조경포에 있는 나무들을 학교 곳곳 빈 자리마다 파고들며 넓은 간격으로 식재하였다. 웬만한 나무는 분을 뜨지 않은 나근식재를 하였다. 식재 지역이 가깝고 곧바로 심는 것이라 맨뿌리로 옮겨 심은 것이다. 모든 여건이 제대로 진행되기에 촉박했고, 힘에 겨웠다. 그렇게 옮겨 심은 나무들은 그대로 잊혀지고 만다. 핀오크를 드럼통으로 수입하였다. 조경포를 트랙터로 갈아 엎고 정지하여 관리기로 파종상을 만들었다.

그때의 사진을 보면 아직도 가슴이 설레인다. 교과서에 나온 그대로 파종상을 만들어 나갔다. 60~80kg의 롤러를 구입하여 이랑위에 올려 끌고 지나간다. 파종을 할 때는 곱게 갈아 놓은 흙을 다시 눌러주어야 한다. 파종한 종자가 싹틀 때 눌러진 흙은 빈 공간이 없어 종자가 마르는 것을 예방해 주고, 모세관현상으로 수분을 일시적으로 끌어 올릴 수 있다. 그리고 나서 점뿌림 방식으로 핀오크 종자를 파종한다. 나뭇가지로 간격을 맞추어 잘라 그 간격에 맞게 종자를 심었다. 구멍을 내는 막대기를 사용하여 종자를 넣고 흙을 덮어 나간다. 그런 다음 짚을 한 차 구해, 한 쪽에서는 이 짚을 삽을 세워 놓고 쳐서 짚의 껍질을 모두 제거한다. 그렇게 제거한 단단하고 반듯한 황금빛 짚만 모아서 파종상 위를 피복한다. 짚의 굵은 밑부분이 고랑을 향하게 한다. 한 이랑에 볏짚의 윗부분이 중앙에 모이게 두 줄로 덮는다. 볏짚 밑부분이 양쪽으로 고랑을 향하여 가지런하다.

이렇게 깔아 둔 볏짚은 파종상의 습도를 유지하고, 풀을 예방하고, 새나 짐승들의 종자 피해를 줄일 수 있는 효과를 준다. 짚을 깔고 짚이 바람에 흐트러지지 않도록 눌러주어야 하는데, 이때는 비닐 노끈 보다는 새끼줄이 가장 좋다. 각목을 50센티씩 자른다. 그리고 땅속으로 들어가는 곳을 삼각형으로 자른다. 그런 다음 파종상 한 개에 양쪽 2개씩 4개를 박는다. 박을 때는 해머가 좋은 데, 그러면 각목이 부숴진다. 보통 사용하던 삽을 눕혀 때려 박는 게 좋다. 거기에 새끼를 묶고 길게 팽팽하게 두 줄을 누른다. 그런 다음 아까시나무나 개나리 등의 나무를 찾아 새총처럼 나뭇가지를 잘라 모은다. 가지 중 굵고 실한 부분은 길게 하여 땅으로 들어가는 부분을 뾰족하게 비스듬히 자르고, 가늘고 약한 가지를 짧고 만든다. 긴 가지가 땅 속으로 깊게 들어가면서 작은 가지가 새끼줄에 걸치면서 땅 속에 꽂힌다. 그러면서 여기저기 늘어진 새끼가 더욱 견고하게 볏짚을 고정시킨다.

그렇게 파종하여 번식시킨 핀오크가 올해 16세가 되었다. 재작년과 올해 2번 판매를 한다. 물론 내가 여주를 떠난 후 이미 판매가 산발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때는 담당교사가 판매한 것이 아니라 행정실장이 주도하였다고 한다. 아마 그 나무에 대한 역사를 모르기 때문이다. 올해 판매하는 김에 조경포에 핀오크를 파종하느라 옮겨 놓은 나무들도 끼워 팔게 되었다. 중국단풍이나 단풍나무 등이다. 너무 커지면 이제는 판매 시기를 놓칠 수 있기 때문아다. 나무를 기르는 사람들은 이 점을 놓치면 안된다. 지나치게 규격 이상으로 커진 나무를 사가는 업자를 기다릴 수는 없다. 다른 나무는 모두 점(센티)당 6,000원씩 계산하는 것을 배운다. 가령 중국단풍의 규격이 20센티이면 12만원짜리가 된다. 소위 목대라는 것이다. 목대는 자신들이 나무를 굴취하여 가져가는 것이다. 조경수협회나 조달청고시 가격에 약 1/4 정도 되는 가격이다. 조달청 고시가격은 현장 도착가를 기준으로 한다.

업자도 먹고 살아야 한다. 이윤을 추구한다. 그 점을 놓치면 안된다. 그 협상이 결렬되면 결국 나무를 팔지 못한다. 모든 게 다 그렇지만 적절한 선에서 양보하게 배려하지 못하면 협상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대신 당장 구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사용되는 핀오크의 가격은 상향조정하기로 하고, 그 심었던 자리에 대체식재를 요구하였다. 그런 조건에도 응할 수 있는가를 확인서로 약속하고 계약을 성립시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자의 동태를 잘 살펴야 한다. 다행히 아직 공사는 끝나지 않았지만 선입금한 상태에서 성실하게 작업을 하고, 구덩이를 메우고 비상사태를 해결하는 성실성을 보인다. 아직 끝까지 가봐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노각나무와 낙상홍을 판매하는데 도와 준 업자에게 내친김에 캐서 주는 나무의 가격을 말했더니 여전히 납품가격인데요 하면서 매기는 가격 역시 점당 6,000원을 매긴다. 그 업자는 모든 나무를 점당 6,000원으로 매기는 게 매너로 되어 있다.

이천에서 86아시안 게임, 88올림픽 때 판매한 운동장 가장자리의 메타세쿼이어와 느티나무 중 느티나무를 솎아 판매한 것이 첫 판매 경험인데, 이때가 벌써 30년이 가까워오는데, 그때 내가 속으로 계산한 것이 첨당 1만원이었다. 그러니 나무 가격은 더 오르지도 않고, 다만 그때 매우 부족하고 쓸 곳이 많은 품귀가 되는 나무는 점당 1만원으로 계산하고 그 이외의 나무는 점당 6,000원으로 계산하면 비슷해진다고 결론지은다. 물론 시대와 세류와 세상이 변하면 이 가격도 달라질 것이겠지만 30여년 동안 지켜본 결과는 이렇다. 더 오르고 더 달라지기를 기대하지만 소위 나까마라고 하는 사람 따로 있고, 현장에서 작업하여 납품하는 사람 따로 있고, 납품된 나무 값을 지불하는 업체 따로 있는 상태이다 보니 여전히 조경수목의 유통은 근대화라는 외투를 걸치기에는 멀기만 하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을 챙기는 사람은 따로 있는 형국이다. 그러니 자신이 나무의 미래를 내다보고 재배하고, 직접 조경사업을 따 내서 시공한다면 유통비용 모두를 건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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