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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함께 어울릴만한 즐거운 공간

by 나무에게 2013. 12. 24.

서하면 일대의 화림동 계곡의 정자를 살펴보면서, 계곡 너머 산책로가 자주 눈에 들어선다. 저쪽으로 걸었으면 하는 생각을 애써 누른다. 그랬더니 기어코 그곳의 비의가 거두어진다. 예전에 이곳은 과거 보러 떠나는 영남 유생들이 덕유산 60령을 넘기 전 지나야 했던 길목이라 한다. 최근에 농월정(터)-동호정-군자정-거연정을 나무다리로 이은 6.5㎞ ‘선비문화탐방로’(2006년 말 완공)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진작 알았다면 그 길을 걸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2008년도 다랑쉬 답사 주제가 옛길이니 미리 답사하는 기쁨도 누릴 수 있었는데 놓쳤다. 선비들이 지나쳤던 숲과 계곡, 정자의 자태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그러면서 동호정 앞의 차일암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정자에서 보았을 때, 해가 물에 비추어 눈부신 성가심을 바위가 막아주는 역할을 해서 차일암이라 말했다. 이 차일암이라는 이름의 바위가 꽤 있다. 세검정 차일암은 조선시대 실록 편찬을 완료하고 나서 차일을 치고 세초(洗草)를 하던 너럭바위라고 한다. 세검정 정자 아래 차일을 쳤던 흔적인 홈이 패여 있다. 그런데 동호정(東湖亭)은 조선 선조 때의 성리학자인 동호 장만리(章萬里)의 공을 추모하여 1890년경 후손들이 중심이 되어 건립하였고, 정자 앞 계곡 사이에 너럭바위인 '차일암(遮日岩)'은 '해를 가릴 만큼 넓은 바위'라는 뜻이라고 한다. 실제로 햇살의 반사를 어느 정도 가렸을 것이고, 차일을 치고 행사를 지룬 적도 있었으리라.

차일암에서 회원들은 한참 서성댄다. 바위 중간에는 물이 담가져 있다. 작은 못이 바위에 있는 곳이다. 밤이면 이 작은 못에도 달이 비출 것이다. 그 풍류를 떠올린다. 초등학교 소풍이라면 이곳을 꽉 채워 자연의 풍광에 젖게 할 수 있을 규모의 바위다. 동호정의 특징은 올라가는 계단에서 찾을 수 있었다. 도끼로 통나무에 홈을 내어 만들어 거칠면서도 질감이 친근함을 준다. 주변의 거연정이나 군자정에 비해 단청이 꽤 화려하다. 계곡 한가운데 자리한 차일암의 다양한 쓸모와 차일암을 돌아나가는 물줄기의 흐름을 즐겼을 것이다. 동호정 바로 밑에는 차고 깊은 물이 흐른다. 서늘함을 저절로 안겨 준다. 동호정 아래 바위에는 시멘트로 대를 만든 흔적도 있다. 호방한 사람은 여름 한 철 이곳에서 뛰고 헤엄치고 자연 속에서 심성을 다듬었을 곳이다. 아이와 청년과 장년, 노년이 함께 어울릴만한 즐거운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