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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休林山房

006. 겨울, 청계에 씻어라 - 청계산 청계사

by 나무에게 2014. 1. 27.



006. 겨울, 청계에 씻어라 - 청계산 청계사 / 온형근



신선이 거닐던 길을 걷는다.

걷고 싶을 때 걸을 수 있다면 그는 행복하다. 나서고 싶을 때 나설 수 있으면 그는 실천가다. 하고 싶은 일을 즐겨하는 사람은 신선이다. 즐겁게 산다는 것은 곧 내안의 모습을 파악해서 그 실체를 드러내는 일이다. 내 직업이 책 사서 읽을 경제적 여유만 되면 좋겠다고 한 게 어려서의 소박한 바램이었다. 그러다가 책만 보는 바보라고 자신을 간서치看書痴라고 지칭한 이덕무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후, 정민 교수가 이덕무의 명징한 글을 좋아하여 여러 번 소개한 것을 보고는 더욱 이덕무를 마음 속으로 좋아하게 된다. 그런데 이제는 걷는 것이 책 읽는 것보다 좋아졌다고 처음 써본다. 청계사를 찾았다. 어머니의 49재 이후 자주 찾는다.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영혼을 품었던 곳이다. 평일이니 사람도 드물다. 데크 계단 아래에서 출발하여 지난 가을에 찾아낸 신선이 노닐만한 산자락길로 접어든다. 발바닥에서부터 따뜻함이 솟는다. 호흡이 고르게 퍼지고 겨울숲으로 따사로운 햇살이 보드랍다. 혼자 걷는 이런 행복한 순간을 즐긴다. 그냥 나섰더니 거기가 선계인 것이다. 훌쩍 나서는 일은 어제를 후회하지 않고 내일을 위하여 꼬리치지 않는 것이다.


찰피나무에 기대어 황홀해진다.

한참을 머물다 걷다 앉았다 놀다 돌멩이를 들어서 던져보기도 하고 하늘로 향한 겨울 나무의 서로 다른 소망을 듣기도 했다. 너무 짧아서 아쉽기만 한 길이다. 고갯길에 올라 청계사 와불이 누워있는 계단으로 내려간다. 내려가면서 사진을 몇 장 찍는다. 이 길을 거꾸로 오를 때를 생각한다. 가파른 숨을 고르느라 집중하던 곳을 내려가면서 여유롭게 숨쉰다. 때로는 길을 바꿔서 걸어 보는 것도 좋다. 루쉰이 "고향"이라는 소설에서 '희망이란 것은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위의 길이나 마찬가지다. 원래 땅위에 길이란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코스도 마찬가지다. 정해진 코스가 있으면 정해지지 않은 코스도 있는 것이다. 누구나 좋아하고 쉬운 길만이 길이 아니다. 싫지만 가야만 하는 길도 있고 가기 어려운 길도 있다. 모두 다 길이다. 와불 앞에 한 사람이 절을 연속 하고 있다. 조심스럽게 지나면서 지장전 앞에서 찰피나무를 만난다. 몇 번을 다녔지만, 그것도 잎이 모두 떨어진 겨울에 찰피나무 열매를 보고 황홀해진다. 유난히 찰피나무를 좋아한다. 아마 여주에서 열매를 싹틔우기 위해 고생했던 젊은 시절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108배 절운동을 시작한 지금, 혹여 찰피나무 열매로 만든 소위 염주나무 염주를 만날 수 있는 인연은 없을까를 떠올렸으니 말이다.


지장전과 동종 사이에 찰피나무는 빛난다.

동종각 주변에서 찰피나무 열매를 줍는다. 여기 저기 구멍에 박혀 있기도 하고 찰피나무 아래 얼어 붙어 있기도 하다. 조금 더 쪼그려 앉아 집중하여 찾으니 여기 저기 열매가 웃고 있다. 크고 작은 것들이 섞여 있다. 워낙 빗자루질이 잘 되어 있어서 그 많던 염주들은 다 어디로 쏠렸는지 알 수 없다. 피나무 열매를 파종하면 그 해에 싹트지 않는다. 2년만에 싹이튼다. 그래서 발아촉진을 위하여 다양한 연구 논문들이 즐비하다. 염산을 사용하고, 농도와 시간을 맞추고, 또는 절구나 다른 기구로 상처를 내기도 하고 하는 많은 방법들이 시도되어 연구 결과들이 쏟아져 있다. 2년 발아를 1년 발아로 단축시키기 위한 방법들이다. 그만큼 열매는 단단하다. 내 주머니에 수북하게 한 주먹 잡힌다. 찰피나무 열매는 날개 주맥의 절반에서 늘어져 매달려 있기에 그 모양이 보통 멋진 게 아니다. 잎이 비행을 하는 것이다. 멀리 퍼져 종족을 번식시키기 위한 배려다. 물론 새가 열매를 먹고 배설물로 떨어트리면 그 열매는 발아 촉진 처리가 된 것과 같아서 그 해에 바로 싹이 튼다. 찰피나무를 한참이나 우러러 쳐다보다가 극락보전에서 예를 갖춘다. 오늘도 영혼을 떠내보내는 49재가 있다. 까맣게 그을린 굴뚝 주변으로 산고양이들이 위계를 갖춰 낮은 포복으로 다가선다. 저 음식들도 순서가 있어 먼저 시식하는 동안 기다리는 고양이들의 긴장이 그 공간을 팽팽하게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