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재::休林山房

008. 불타는 단풍이라 말하지 마 - 내장산 내장사

by 나무에게 2014. 2. 10.



008. 불타는 단풍이라 말하지 마 - 내장산 내장사 / 온형근



그 계절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한번도 꿈에서라도 내장산 단풍을 보러 떠나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어. 가을 축제 단골 메뉴처럼 온갖 유혹이 쏟아져도 나서지 않을 것이야. 그 계절이 아니라면 꼭 한 번 가봐야지 했었지. 그러고는 잊혀지곤 말았지. 그랬다는 생각들이 담담하게 떠올랐어. 처음에는 그저 시큰둥하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꽤 오랫동안 반복되었던 생각들인데 묻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겨울눈길이 미끄러운 내장사 입구에서 두리번거렸어. 단풍나무 붉은 겨울가지들이 만들어내는 집단군무는 하늘을 배경으로 매혹적이었지. 붉은색이 뭉쳐내는 붉은 기운은 흰 눈을 배경으로 뿌연 하늘로 확산되며 경계를 긋고 있었어. 천왕문 앞에 있는 비자나무는 눈을 배경으로 선명한 기운을 뿜고 있었어. 뽀드득 눈 밟히는 소리에 정신이 바로 들었었고 이내 발걸음이 조심스러웠지. 하지만 걸을수록 뽀드득 눈 밟히는 소리는 리듬처럼 좋은 기분으로 이어지는 것이었어. 참 맑아지는데, 눈 발자국 소리에 반하여 혼자 신났어. 자꾸 뽀드득 뽀드득 그 소리 위로 나를 얺어 놓고는 슬쩍 공중으로 떠다녔지.


흰 느티나무 골계미에 드러난 생각들.

수피가 자주 씻기었기에 훤하게 드러나 있는거야. 습한 기운도 꽤 많아 보였지. 내장사 일주문을 지나면서 느티나무에 이끌리는데 허옇게 드러난 나무껍질이 의젓했어. 하얀 도포자락으로 손을 뻗고 있는 것 같았지. 그 길이 꽤나 길고 멀어 보였던 것도 단단하게 도열하여 같은 간격과 율려로 서 있는 느티나무의 착시였는지도 몰라. 고결한 척 까만 수피의 색을 매일 조금씩 탈색하는 새벽 안개가 떠올랐어. 사람들에게 보여지지 않는 시간에 그렇게 색을 벗고 있었던거야. 겨울 가지는 나몰라라 하늘을 향해 고운 선을 긋고 있고 줄기만 그렇게 하얀눈을 닮아가고 있었어. 아마 내장산의 가을 단풍에 식상하여 느티나무 그렇게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고 있었을 것이야. 살짝 젖어 눈 밟히는 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도 껍질을 씻어내리던 수분들이 지상의 눈으로 뿜어졌었기 때문이야. 느티나무 껍질과 밤새 살짝 내린 눈은 그렇게 서로를 위무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안도하였던거야.


불타는 단풍이라고 부르지 말아요.

나를 그렇게 부르지 말아요. 내장산 불타는 단풍에 내장사 법당은 힘들었었나봐.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에 놀랐고, 그 관심이 특정 계절인 가을에만 지독한 것에 체했었나봐. 사람들 백이면 백, 천이면 천의 입으로 불타는 내장산의 단풍을 노래할 때 불씨는 달아 올랐던 게 분명한거야. 내장사 진입공간에 있는 연못이 불씨를 품어 적시기에 벅찼던 거야. 내장사는 일주문으로 시작하는 진입로로부터 천왕문과 정혜루, 연못 공간까지 그리고 법당에 올라가서 사방을 돌아보면 정말 잘 짜여진 사찰 공간 구성이었어. 그러나 대웅전이 소실된 비닐하우스 법당은 전체의 공간 구성을 한번에 실망시켰어. 난 세상 처음 비닐하우스 법당에서 나를 찾아보았지. 절을 하고 명상으로 들었는데, 이건 또 뭐야. 온 몸의 모공이 이리 쉽게 열릴 수 있는거야. 아이쿠, 정색을 하고 한참을 주고 받았지. 뭔가 담아 놓은 내장산이라는데 귀하여 숨은 보물들이었을까. 뭔가가 열려진 모공으로 잔뜩 비집고 들어왔어. 쿵쿵 여기저기 흔들대더라. 내 안 어딘가에 담겨져 어찌 견딜지. 나는 또 어찌 감당할지. 불타는 단풍이라 부르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