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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休林山房

013. 땅의 기운을 진정시키는 탑과 함께 - 운악산 현등사

by 나무에게 2014. 3. 17.



013. 땅의 기운을 진정시키는 탑과 함께 - 운악산 현등사 / 온형근



풍수는 용龍, 혈穴, 사沙, 수水라고 한다. 

산세를 살피면서 둘러보면 간룡과 그에 의해 자리잡은 정혈, 그리고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의 4개의 사가 있다. 그리고 그 앞으로 물이 흐르면서 기를 갈무리하는 것이다. 풍수가 장풍득수의 준말이라고 하듯, 바람을 거두고 물을 얻는 것이다. 운악산 현등사를 찾아가는 방법부터 돌아오는 여정까지 조금씩 배워가며 알게 된다. 한번에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운악산 정상을 향한 등산객은 내려오고 올라가고, 현등사의 108계단은 늦게 나타났다. 현등사를 다녀와 다음날까지 지진탑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땅의 기운을 진정시키기 위한 풍수에서의 산천비보로 탑을 세운 거다. 도선은 태조 왕건에게 절과 탑의 위치를 아예 정해주었다. 신라가 망한 것이 지나치게 많은 절과 탑이었다고 훈요십조에 적혀 있다. 


현등사에서 운악산을 바라보면 

땅의 기운은 험악하다. 절터에서 지진탑 방향으로 사방 산세를 둘러보니 모든 따스한 기운이 그곳으로 뭉친다. 운악산의 거칠고 비틀어진 기가 지진탑에 모여 한번 정화된다. 이윽고 순화된 기운으로 법당을 휘돌고 운악산 정상까지 순진하게 만든다. 약사여래를 모신 보광전은 닫혔다. 왼쪽은 보합태화루, 오른쪽은 운악산현등사다. 어디서 본 듯한데, 창덕궁 안 낙선재와 닮아 있다. 새로 지은 만월보전이 보광전의 기능을 하니, 이제는 공부 공간이다. 새로 지은 팔상전(영산전)도 근사하다. 아직 단청 전이다. 지장전 기와 중수도 한창이다. 적멸보궁에 올라 현등사 법당을 모두 조망하였다. 적멸보궁에서 기상서린 소나무 군락이 극락전을 향해 달린다. 나는 적멸보궁보다 극락전에서 안온한 기운으로 충만되었다. 지진탑에서 끌어 올린 기운과 소나무 군락에서 모아 준 기운의 교접점이었을까. 아미타불이 저절로 새어나왔다.


중국처럼 들판이 넓으면 건물이 높아지고

우리처럼 산이 오밀조밀 높으면 건물이 낮아진다고 했다. 운악산은 가파르고 바라보기에 중후하다. 현등사 법당은 낮고 안정적이다. 허나 새로 지은 약사여래를 모신 일광보살, 월광보살의 만월보전은 지진탑에서의 순화된 기운과 달리 돌출적이다. 게다가 자연 계류에 앉혀졌다. 저 아래에서 올려보면 작으면서도 위용 넘치는 과시형이다. 적멸보궁 쯤에서 봐도 제 혼자 무리에서 이탈한 꽃사슴 같다. 어디까지 더 나설지가 궁금하다. 간신히 팔상전이 가까이서 돌보고 있다. 현등사로 오를 때 운악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너무 흥에 넘쳐 몇 번 되돌아 쳐다본다.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아예 합창을 하거나, 하모니카까지 불면서 내려 간다. 적멸보궁에 들앉아 있을 때 까마귀 목청 높여 주고 받는 소리에 등산객의 소리는 묻혔으나, 끝내 수다는 다시 시작된다. 공양간 늦은 점심 공양을 청한 것도 미안한데, 참 맛나서 속에서도 수다가 일어난다. 재잘재잘 끝나지 않을 기운들이 지진탑에서 고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