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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休林山房

014. 이런, 이렇게 높은 곳에 있었다니 - 삼성산 삼막사

by 나무에게 2014. 3. 31.



014. 이런, 이렇게 높은 곳에 있었다니 - 삼성산 삼막사 / 온형근



벼르던 곳을 찾아가는 길인데도 

줄곧 되돌아 갈 생각 했다. 처음 가는 곳이라 낯설기가 심하다. 자꾸 되돌리려는 발길을 달랜다. 내려오는 사람에게 삼막사 아직 멀었냐고 묻고 싶은데, 곧 다가설 듯 하여 참는다. 참고 오르다 자꾸 이상하여 마침 내려오시는 할머니에게 여쭈니, '이제 초입이오', 허 거참 괜히 물어보았나 싶다. 이제는 그냥 올라가는 수밖에 없다. 포장된 길로 자전거 올라간다. 갖춰 입은 사람들이 꽤 찾는 것을 보니 이 코스가 이들에게 명소일 것이다. 발 아래로 굽이굽이 펼쳐진 산들을 보며 위엄이 차려지는 듯 하다. 경인교대 캠퍼스가 오르는 내내 한 눈에 보인다. 삼막사와 경인교대는 서로 마주본다.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친근한 랜드마크다. 아무런 이정표나 단서를 찾지 못한다. 자연 암석에 다듬지 않아 멋대로인 회양목 군락지를 자주 만난다. 한 개의 나무들의 기운이 뻗쳐 여러 군락으로 기운이 뭉쳐있다. 단단하게 모집된 회양목의 기상이 산의 정기를 보존해준다.


삼막사라는 이름은 장막 막幕에 기원한다. 원효, 의상, 윤필이 막사같은 암자를 짓고 수도하였다는 말이다. 산의 이름도 삼성산이다. 세 분의 성인을 기린 산 이름이다. 망해루에서 바라보는 서울 근교의 산도 장엄함을 준다. 산이 높아야 발 아래 장엄이 도래하는 게 아니다. 절묘한 시점이 열린 곳이고 파노라마처럼 산의 능선들이 오르락내리락 펼쳐지니 장엄 또한 스스로를 드러낸다. 망해루에 정좌하여 멀리 내다보는 참선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큰복이리라. 누군가 저 멀리 산맥의 펼침을 바다라고 했고, 그 바다를 바라보며 뭔가를 깨치는 곳으로 설정한 전각일텐데, 닫혀 있다. 육관음전 앞에서 예를 갖춘 후 명부전으로 들어갔다. 지장보살을 친견함이다. 현판은 명왕전이다. 절을 몇 번 하였는지 알 수 없다. 어느 지점에서 명상에 들었다. 한동안 둔탁한 내몸을 탁탁 치는 기운이 다가왔다. 뭔가 관통하려는 기운이다. 꽉 막힌 온몸을 이어주는 기운이다. 마치 어려서 내 몸을 유유자적 맴돌며 다스렸던 젖줄 같다. 아름다운 깨침이다. 내 안에 뭔가가 흐르고 있음을 느낀다는 것은, 내 안에도 산계山系가 있어 산곡山曲이 있고 산곡山谷이 있다면 차라리 복된 일이다.


업보 하나를 업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신발끈을 제대로 매지 않아 힘들었을까. 삼막사 너머 염불암도 가고 싶지만 늦었다. 이곳은 등산할 생각으로 올라야 한다. 다시 염불암 쪽을 찾는다면 기억해두어야겠다. 삼막사를 다녀온 다음날 책을 읽는 데 목에 힘이 들어가 뒷목이 땡긴다. 언제였던가, 뒷목의 뻐근함에서 해방된 게, 그건 이도저도 아니었다. 혈압약으로 간단 처치된 것이다. 그 혈압약이 안듣는가 갸우뚱댔다. 다 아니었다. 그날 무거운 업보 하나 업고 내려온 탓이다. 간단한 삶의 이치다. 뭔가를 짊어 맨다는 것은 그대로 뒷목을 뻐근하게, 무겁고 아프게 하는 게 온당하다. 어깨를 짓누르던 업보 하나가 다음날 오랜만에 뒷목 아픔을 호소한 것이다. 읽던 책보다는 목 축이는 곡차가 묵직했겠다. 자꾸 업었다. 감당할 수 있다면 받아들인다. 포장된 길이 아닌 등산로였다면 업을 수 없었을까. 내려오는 동안 무릎은 잠시 아프다는 말을 잊는다. 곳곳에 진달래가 활짝 피어 봄기운 가득한 춘분의 말후 전날이다. 삼막사 일주문에서 육관음전을 향하는 돌계단 틈에 피어난 제비꽃이 내게로 왔다. 산을 가득 메운 등산객에게 팔려 있는 진달래보다는 다소곳 고개 숙인 채 따라나선 제비꽃으로 춘분의 말후는 충분히 의미있었다. 잊을 수 없는 풍경은 가슴에 스며 바짝 말라 가벼워질 때까지 업보로 따라 다닐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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