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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休林山房

016. 가슴 막힘 뻥 터지듯 후련한 - 봉명산 다솔사.01 / 온형근

by 나무에게 2014. 4. 7.



016. 가슴 막힘 뻥 터지듯 후련한 - 봉명산 다솔사.01 / 온형근



며칠 가슴이 막막했다.

지켜야 할 원칙과 좋은 게 좋다는 정분에 갈등했다. 공론되어야 할 일과 개인적 의견으로 묻혀야 할 일의 입장 드러냄이 분별없이 표출된다. 낸들 좋은 사람들 틈에서 사람 좋다는 소리 듣고 싶지 않을까. 일찌기 내 직업이 부친의 완고한 지방공무원 우상에 더해진 완장이었음을 안다. 그러면서 교직은 전문직이라는 말로 정체성을 부여했다. 왜 전문직인가. 수업 때문이다. 수업은 여러 제도적 보완장치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교육과정이다. 그래서 학교는 교육과정에 의해 개별 전문성이 부여되고 운영이 보장된다. 개별적으로 부여받고 보장되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것도 교수학습의 전문화된 개별성에 개입하거나, 변경하거나 협의하여 바꾸거나 할 수 없다. 소질이 다르다. 협의의 대상이 아니다. 공론화될 수 없는 개별성이다. 너와 내가 나눠먹기 할 수 없다. 전체에 웅변하여 호소하고 어떤 방향으로 몰고 갈 수 없다. 교수학습은 철저히 개별성으로 전문성을 획득하였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난 원칙이기에 교육의 전문성을 이끌고 있다. 그외의 어떤 것도 교직의 전문성을 대신할 수 없다. 만약  '사람이 하는 일'이니 뭐니 하면서 퉁치려 한다면 외면해야 한다. 교직이 전문직이라는 해석을 서둘러 거둬들여야 한다. 


어찌하여 다솔사까지 갔을까.

무주 덕유산에서 지리산을 떠올렸을 때, 대뜸 대연사에 가 있던 마음이 다솔사 적멸보궁에 자리했다. 와불 실루엣으로 환해진 시선이 다솔사 내풍수內風水인 좌청룡 우백호 차밭의 녹시율綠視率 100%로 다다른다. 막혔던 가슴이 환해진다. 법당 뒤 와불의 터진 틈새로 내 안에 머물던 찌꺼기 같은 갈등과 울적함이 그대로 뻥 뚫려 후련해진다. 뒤로 봉명산이 오롯하다. 까짖거 원칙이고 법이면 뭐고, 서로 인정을 앞세워 비인정을 탓하면 어때. 원칙과 법과 인정과 비인정도 공론으로 협의하여 바꿀 수도 있는거지. 세상이 그렇다고 끄떡이나 할까. 내가 괜히 만사를 여의하고자 나선 게 쑥스러웠졌다. 남에게 앞서서 이끈다는 생각과 관념이 이토록 나약한 것을 나서긴 왜 나섰을까 싶다. 다솔사에 와서 거느리다, 이끈다는 솔率자의 헛됨을 새긴다. 거느리고 이끄는 것이 외고집이어서는 안되겠다. 더 열어두고 이도저도 괜찮다고 좌우로 흔들흔들 그렇게 시원한 차밭의 녹색에 물든다. 절을 하면서 자꾸 눈을 떴다. 다시 감으면 내안에 녹색물이 여기저기서 뚝뚝 떨어진다. 차를 마시면 티끌같이 많아진 사념을 쓸어낸다. 다솔사 적멸보궁이 그랬다. 스스로 지치게 했던 몇 가지 관념들이 녹綠에 물들어 감쪽같이 푸릇푸릇 새로워진다. 그래서 사찰은 법당에 들어야 한다. 내몸 각각의 세포와 그날의 기운이 만난다.


차의 성분은 300여 종류라 한다.

사람이 차를 마시고 나서 이러니저러니 품평을 하는 것은 차의 어떤 성분과 그 사람의 어떤 기운이 만나서 얻어지는 지적 탐구 활동이다. 공간과 시간과 분위기에 따라 다르게 작용하고 함께 공유하는 사람에 따라 또 다를 것이다. 대체적이고 공통적인 지식들이 모여서 개념을 형성한다. 개념은 통용되는 것이지만, 그래도 개별자인 개인의 존재적 해석을 더 존중해야 한다. 그래서 세상이 발랄 충만해진다. 내가 다녀 본 사찰이 그랬다. 법당에 앉았을 때 마다의 기운이 존중된다. 수없이 많은 그 사찰의 내적 연유들과 내가 지닌 근기가 만난다. 내 근기의 지극히 일부분과 만난다. 그것도 그 날 그 순간의 만남이 어울려서 취해진다. 그러니 직관直觀이다. 한번에 뚫고 들어간다. 봉명산 다솔사의 적멸보궁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뻥 뚫린 와불 실루엣으로 가득찬 녹시율 100%의 차밭은 일부로라도 지니고 있겠다. 아, 그러고 보니 이번 사찰직관은 앉아서 명상에 들거나 선으로 이끈게 아니라 서서 눈감고 느낀 것이다. 그것이 다른점이다. 아마 눈높이에 맞춰 자꾸 훔쳐보던 차밭의 진한 녹색에 이끌렸던가 차밭이 나를 거느렸던 게다. 내가 법당에 있는 게 아니라 차밭에서 차를 따는 농부로 떠 다녔던 게다. 밀짚모자 쓴 채 짙은 남색 팔토시로 바쁘게 찻잎을 따내고 있던 게다. 찻잎에 몰입하고 있는 구부정한 신선하나 거기 있었던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