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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休林山房

011. 동백기름을 바른다는 일이

by 나무에게 2014. 4. 15.



동백 기름을 바른다는 일이 / 온형근



어느날 아침, 분연히 자리 털고 일어나

고운 세사로 만든 수건을 찾아 동백 기름을 묻혔다. 집에 있는 찻상이며 찻잔놓개 등을 집어 들고 동백 기름으로 닦아내고 발라주었다. 처음에는 동백 기름의 번질거림이 몸을 오무라들게 하여 싫기도 했다. 동백 기름 냄새 역시 기름져서 별로다. 하지만 나무를 소재로 하는 가구들이 달라지는 모습에 놀란다. 그래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새벽에 일어나 동백 기름으로 이것저것 나무로 된 것들을 문지르고 닦고 하였더니 내 손바닥까지 반질거린다. 동백 기름 참으로 묘한 물건이다. 어떤 것이든 그 재료의 성질을 제대로 드러나게 해주면서 동시에 그 성질을 아주 멋지게 발현시켜준다. 아아, 동백기름이여...내 그대를 어찌 이제 알았을까. 오호 통재라.  아아...손에 묻은 동백 기름을 조금 더 발라서 머리에다 비벼봐야겠다. 이 참신한 실험정신으로 하루를 버팅겨보자. 방금 감은 머리처럼 젖어있는 내 머리칼, 남보이기 민망하다. 숨어야겠다.


차를 마시면서 동백 기름 이야기를 올렸다.

우리가 교육자로 살아가는 일도 그러하지 않겠느냐고. 아이들의 성질을 그대로 보존시켜주면서 동백 기름을 발라 그 성질이 훨씬 빛나고 근사해지게 하는 일이 아니겠냐고. 원래의 성질이 다 다르니 보존시켜주는 일도 참 벅차고 힘든 일이다. 거기다가 원래의 성질을 빛나게 해주는 일은 거의 신의 영역처럼 까마득한 일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하려고 시도하고 인내하며 이끌고 나가야 한다. 그게 가르치는 일이다. 그러면서 교학상장하는 일이다. 아이들 원래의 성질에서 내가 배우는 것도 있어야 한다. 그 원래의 성질을 빛내게 하려면 내게 동백 기름 같은 반질거리는 윤활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나를 기름지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이들 원래의 성질에 다가가 기름을 발라주어야 하는데, 그 기름을 무엇으로 충당하여야 할까.


생각이 여기까지 오니, 억지로라도 기름에

해당하는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 내게 기름으로 작용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를. 기름칠을 많이 한다고 하여 다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닦아주고 어루만져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한번에 많이 칠하여 주고 외면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꾸준히 관찰하고 필요할 때 기름을 발라주어야 한다. 많은 학생을 한번에 기름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오늘은 어떤 아이, 내일은 어떤 아이 하면서 천천히 기름 바를 준비를 한다. 기름의 속성은 부드럽고 반질거린다. 내게서 부드러움은 있는가. 여리기만 하지, 부드럽지 않은 것은 아닌가. 내게 반질거림이 있는가. 질박하기는 하겠지만 반질거림은 없지 않은가.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부드러움과 반질거림을 동시에 지녀야 한다. 아이에게 너그러운 내 모습에서 부드러움으로 이어가야겠다. 질박하고 투박한 내 모습을 약간 뻔뻔한 반질거림으로 드러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