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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休林山房

020.삼성각과 느티나무가 있어서 눈발을 받아주는 - 종남산 송광사

by 나무에게 2015. 1. 2.

 

 

 

비례와 송광사

 

 

비례라는 게 아무리 파격과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그렇다. 사람이 친근하다는 것은 닮은 게 많다는 말과 같다. 송광사 대웅전의 문을 연다는 것은 그것도 우측으로 들어갔으니 망정이지 큰일 날 뻔 했다.. 왼쪽은 열자마자 압사였을지도. 어깨를 추리거나 외투를 벗거나의 절차 잆이 바로 절하고는 두리번 거릴 마음조차 없이 문고리 잡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좌불안석이 그것이었다. 명상을 위하여 가부좌를 틀고 들어 앉게다는 마음은 이미 첫 만남에 사라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금강문을 통하여 천왕문에서 이미 사천왕들의 꽉찬 비례에 이거 뭐지 했던 것이 대웅전에서 한꺼번에 참을 수 없는 가벼운 것들이 무엇이었겠는가를 알게 된 것이다.

 

순천 송광사야 승보사찰이고 두루 여러 말 할 나위없는 곳이지만, 종남산 송광사도 기대에 부응하는 입지였다. 신라시대부터 호국사찰의 기운을 뿜은 곳이라니 가까이는 조선까지. 너른 논밭이어야 할 곳에 덩그러니 공간을 들어 올려 사찰건물이 자리하였다. 전주 완주의 시민들에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입지였다. 위봉산의 위봉사도 같은 이치에서 전주와 완주 시민들에게는 소중한 곳이리라. 위봉사는 들려보지 못하였다. 다른 기회에 또 다른 인연으로 직감으로 느끼고 싶었다. 아니 종남산 송광사가 그러기에는 나를 헤어나오지 못하게 하는 어떤 위력을 안겨주었다.

 

비례에 맞지 않는 불상 앞에서 절을 할 때, 나는 위축 정도가 아니라 그 자리를 빨리 일어나고 싶었다. 가만히 앉아 마주보며 같은 비례, 또는 늘 보아오며 참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을 때 나는 마음이 편하다. 전각 꼭대기까지 머리가 닿고 마치 굽어 내려보듯 절하는 내 위로 쏟아질 것 같은 무게감은 머리 위가 궁금하여 머리 아래의 생각과 가슴에 품은 기상과 느낌과 세상에 대한 연민까지도 모두 한꺼번에 사라지게 한다. 세상에 놀랄 일도 많겠다고 하겠지만, 미리 알고 들어가면 좀 다를까. 신발 벗고 댓돌에서 문고리 잡아 당기고 부처님에게 향하는 순간 모든 것은 달라졌다. 좌우상하 가득한 곳에 중생의 고달픔은 한꺼번에 사라지고 신성 가득한 공간에서 미미하여 부족한 인간의 왜소한 욕심 하나 꿀꺽 침을 삼키고 말았어야 했다.

 

결국 전각마다 기웃대던 나는 지장전, ...모두 외면하고 삼성각으로 향하였다. 산신령이라도 만나서 이런 속내를 들키고 싶었다. 다행이다. 왼쪽 구석에 고양이보다 좀 커보이는 호랑이에 올라탄 할아버지가 보였다. 셋 모두 나를 쳐다보며 위로의 시선을 보였지만 나는 막무가내 단군할아버지라도 좋고 산신령이라도 좋을 호랑이 탄 할아버지를 붙잡고 늘어졌다. 그의 사람 좋은 미소가 좁은 삼성각을 가득 채운다. 나도 정좌하여 명상에 든다. 평지 가람인 종남산 송광사는 품을 게 많다 보니 아직 배가 너무 고파 보였다. 너른 사찰 공간임에도 가람 배치는 아직 진행 중이다. 루와 정과 나무들이 자리잡고 있는 중이다. 천왕문에서 바라본 대웅전까지의 일직선이 가장 빼어나다. 그 외의 공간과 전각과 식재는 사족이다. 천왕문 양 옆 느티나무가 그나마 사찰의 기운을 보존하고 있다. 한참 지나면 사찰 가장자리에 심은 백송이 이곳의 기운을 돋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배게 심었다.

 

너무 배가고프고 비어 있다. 그저 삼성각에 모신 것만큼의 비례면 딱 좋겠다. 절의 기운도 절의 세력과 경제와 번창도 꼭 그만큼이면 좋겠다. 알맞은 비례일 때 사람도 수도승도 사찰도 그곳을 둘러싸고 있는 전각과 불상도 모두 함께 웃을 수 있다. 불상이 꽉찬 대웅전 전각은 무슨 고생인가. 발 디딜 틈도 없는 곳에서 매일 공양과 수행하는 스님은 또 뭔가. 덧없이 인연 따라 들리는 보살들은. 삼성각에 들어가면 그렇게 말한다.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고 그러니 어쩌겠냐고 작은 산을 배경으로 아담하게 등을 쳐준다. 내 얼굴보다 조금 작아보이는 그림 속의 2차원에서 계속 인자한 웃음과 달래는 손놀림 그리고 세월을 녹여내는 무심이 하얗게 덮인 눈만큼이나 순정하다. 종남산 송광사에서 눈 오는 날 산신령이 나타나 마음을 잡아 준다. 더 배를 줄이고 더깨를 벗겨 작아지고 너와 내가 비슷하게 생기도록 같은 비례로 어깨 나란히 하라고 말한다. 못난 놈들은 얼굴만 봐도 흥이 절로 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