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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037-풍경이 지닌 치유적 본질

by 나무에게 2013. 12. 23.
풍경이 지닌 치유적 본질



시인에게 ‘풍광’이란 그저 즐거운 흥취의 대상에 머무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에게 그것은 우선 살포시 부는 바람과 함께 찾아오고 움직이는 생명의 주체이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빛에 의해 생성되는 자연의 살아있는 풍경이자, 존재하는 산과 들, 숲과 나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또 다른 존재, 즉 이들 자연물들이 엮어내는,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고 풍겨오는 이 무한한 빈 공간을 꾸며내는 일종의 아우라와도 같은 것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그것을 자신의 몸과 마음, 정신의 안쪽으로 불러들여올 수도 있으며, 또한 풍광 스스로 시인에게 감정과 인식을 불러일으켜주기도 한다. 요컨대 ‘풍광’이란 “나 없이도 만물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나뭇잎에게-풍광10」)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그렇게 시인은 먼저 풍광을 한껏 가늠해보는 일로부터 출발한다. 이때 풍경은 다정히 말 건넬 수 있는 살아있는 주체임은 물론이다. 그런데 온형근 시인의 풍경에 대한 사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풍경을 자신의 삶에 끌고 들어와 현실의 의미와 대조시켜봄으로써 보다 본격적인 사유를 전개한다. 이 과정에서 그의 목소리는 매우 복합적인 깊이를 가지고 내면화된다. 그에게 풍경과 대조를 이루는 삶의 일상적인 현실은 ‘상처’의 의미를 함축하는 바, 시인은 “상처에게 환히 트이고 깔끔해지는 것”(「상처의 풍경」)은 오로지 풍경밖에 없다고 말함으로써 풍경이 지닌 치유적 본질을 시적 사유의 전면에 올려놓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치유적 본질이란 마땅히 일상적 삶에서 시인이 겪는 갈등과 고뇌, 배리와 절망 따위를 넘어설 수 있는 힘과 관련된다. 말하자면 뜻한 대로, 마음먹은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남과 자신을 탓하며 얽힌 실타래를 쉽게 풀지 못할 때, 시인은 풍경에게 말 건네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비가 올 때 그 풍경은 “바람에 말렸던 포화된 빗물”로, 낙엽이 길가에 뒹굴 때 그 풍경은 “길 하나 아늑히 뚫려 들어가 있는”(「풍경의 가벼움」) 그런 가벼움을 지닌 존재로 그에게 다가선다. 그것은 순간적으로 타오르는 것이 아니라 “뜻하지 않게 눈앞에서 맴돌다 꿀꺽 삼켜”(「풍경의 가벼움」)지는 안온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시인의 내면에 자리 잡는 그런 것이다.
이처럼 시인은 풍경을 대상으로서가 아닌 주체의 내면에 자리잡은 의식, 즉 분별의 그림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풍경은 내 속에서 자기를 생각한다/나는 풍경의 의식이다.”(「만취의 풍경」)라는 인식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흔히 동양적 자연관의 본질로 이야기되어 온 ‘물아일체’나 ‘정경합일’의 경지와는 다른 자리에 선 것이며, 따라서 자연적 대상을 인간적 주체의 동일화를 위한 수단으로 삼는 일반적인 서정의 인식을 넘어서는 것이다. 시인은 시집 뒤의 한 여행시편에서 그 풍경을 “갑자기 쏟아지는 비와 금방 그치는 환함/내 안의 풍경도 호주의 여름비를 닮아/속을 한꺼번에 쏟아 내고 거둔다.“(「내 안의 풍경」)고 표현하기도 한 바, 이 상호비교의 우선권은 마땅히 풍경에게 있다 할 것이다.
이렇게 온형근 시인의 풍경론은 ‘분별’의 목적을 가지고 쓰여진다. 그것은 물론 삶과 의미의 시시비비를 가린다거나, 호불호를 따지는 일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우주율’이며 ‘어수선한 세상을 봉안하는 일’로서, 시인이 마음 쓰는 “상처를 망각하기 위한 몸의 추스름”(「풍경의 분별」)이 내맡기는 ‘길 나섬’이기도 하다.

그 긴 길은 시름이고 쓸쓸하여
몸을 근질이며 자주 발길질을 종종거리고
계절마다 돌 틈 사이에 핀 햇살같아
그악스레 다시 정겨운 순간을 살아가는 당위다
- 「풍경의 분별」마지막 부분

여기서 우리는 온형근 시인의 곡진한 풍경론이 다다른 몹시도 순결한 결론을 본다. 일상의 고달프고 어두운 그늘과 ‘풍광’의 안온하고 따사로운 기운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이 삶의 주체들 사이의 은밀한 대화는 안과 밖의 ‘분별’을 거부하는 새로운 변증법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박윤우(서경대 교수, 문학평론가), 시집 <풍경의 분별> 해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