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中犬) (시, 유용주)
집안 내력은 들먹일 필요도 없지만 성질 또한 괴팍해서
고혈압, 고지혈증에다 신경성 위장장애를 거쳐 식도궤양 까지 각종 성인병을 쓰러진 술병처럼 달고 다니면서
독한 약은 우선 견뎌내기도 힘들고 식구들 폐 끼치기 싫어 담배와 술 먼저 줄이고 새벽에는 운동장 돌고 저녁에는 수영 주말에는 산에 올라 비지땀 흘리면서 안간힘을 쓰는데
몸과 마음 시퍼렇게 독이 올라 문학 공부를 시작한 뒤로 멀리서 바라보며 존경했던 김현, 김남주, 고정희 선생님 흙 이 되어 돌아가시고 술자리에서 몇 번 만났던 기형도, 이연 주, 진이정도 물이 되어 흘러가 버리고 김소진도 가고 중호 형도 가고 김강태, 임영조 선생님 가시고 가까이 모시며 숨 소리까지 배우려 했던 명천 선생께서도 관촌 마을 소나무뿌 리로 돌아가시고 작은형, 큰형수, 매형, 어머니, 아버지를 비 롯해 내 앞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세상 저버린 사람들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데
가소롭구나 현미밥이 어떻고 버섯과 청국장이 저쩌구 채소 위주의 식 단에다 생감자는 갈고 마늘은 굽고 양파 즙까지 알뜰하게 챙겨먹는, 혼자만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복부 비만의 저, 늙은 개 한 마리
>> 유용주 시집, 은근 살짝, 시와시학사, 2006.1.
============================================== 나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상사를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더 이상 고칠 수 없어', '이제 너무 늦었어' 등의 이유가 전제된다. 나이 많은 상사가 혹여 술자리 등에서 수더분하게 나 어린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며, '그럴까?, 그래?'하며 흔들린다면, 다시 말해 귀가 엷다면 그래도 나 어린 사람이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 어린 사람이 윗사람을 포기하는 경우는 대개 그 사람이 꽤나 고집이 있고,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하여 진저리 칠 정도로 자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한 약은 우선 견뎌내기도 힘들'어로 시작하는 자기 성찰은 다르다. 나이가 먹어도 나 어린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기본 역량을 지닌 것이다. 시인은 어쩌면 보다 쉽게 나이, 즉 세월에 동화되고 묻혀질 수 있는 기초체력을 든든히 하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식구들 폐 끼치기 싫어 담배와 술 먼저 줄이'는 사람들 역시 자연에 동화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시인의 전매권이 아닐까 싶다. 그 결과나 성과물에 연연해서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러한 시도 자체에 굵은 동그라미를 몇 개 그려주자는 말이다.
살면서 흐트러지고 옭아 매고 하다가 흙으로 물로 돌아가고 마는 게 삶이다. 내 아들은 상가집에 가면서
'사람이 죽는 것을 돌아가셨다라고 하는거야.' '그럼 안돼, 돌아가셨어도 다시 와야지.'한다.
'세상 저버린 사람들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데'그래서 '가소롭구나'를 외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살아 남은 사람에게 무엇이 있는가를 성찰하는 것이다. *"불한당"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뜨거운 반성이 요구되는 나날이다. 매일, 순간마다 늙은 개가 되고 있는지를 바라볼 일이다(2006.8.12. 온형근). ============================================== *불한당(온형근 시집, 풍경의 분별, 우리글, 2006.3.)
더 가난해져야 하나 중국이 있어 먹을 수 있는 것 허 드레라 하는데 중국산이면 손사레를 치며 벌레 쳐다보듯 돌아서고 굶주리는 빈곤은 신빈곤층 부유층은 불한당不 汗黨이 되어 늘고 식당에서 흔한 밥 한 끼를 먹으면서 상 에 차려진 갖가지 반찬과 국과 음식들에게 얼마나 힘들 었냐 인사한다 너희조차 물 건너오지 않으면(굶어죽지 않으려 도시 곳곳 빈 자투리에 채소와 곡물을 재배한 쿠 바는 배부르지 않더라도 굶는 일 없이 최소의 열량을 지 닐 수 있었다) 굶는 일이 다반사가 되어도 흙 만지는 일 은 하지 않아야 할 최후수단일까 여전히 농사짓지 마라 할까 삼백만 명 가까운 빈곤의 늪에 중국은 늘 저렴한 식량을 공급해 주는 나라일까 하늘이 있어 흙을 통한 삶 도 있지 어머처럼 늘 중심에 서서 흙을 매만지며 완성되 고 겸허해지는 것을 땀 흘리지 않는 불한당만 늘어나는 시국을 응접하는 방법은 까닭도 없이 길을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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