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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046-문태준, 뻘 같은 그리움

by 나무에게 2013. 12. 23.

뻘 같은 그리움/ 문태준


그립다는 것은
당신이
조개처럼 아주 천천히
뻘흙을 토해내고 있다는 말

그립다는 것은
당신이
언젠가 돌로
풀을 눌러놓았더는 얘기

그 풀들이
돌을 슬쩍슬쩍
밀어 놀리고 있다는 얘기

풀들이 물컹물컹하게
자라나고 있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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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쩍 슬쩍' 그리움의 무게가 커진다. '물컹 물컹' 그리움의 키가 자라고 있다. 그립다는 것은 아무리 감추고 깊숙하게 숨겨 두어도 자란다. 의식에서 비워지거나 청소되어져 있다고 자신 있어 할 때, 슬그머리 머리를 들이민다. 아니면 꼬리를 치거나 한다. 그리움을 시인은 식물성으로 파악한 듯하다. 식물성이다. 한 번 맛있게 먹으면 그만인 동물성이 아니다. 빨간 정육점 불빛에 반짝이는 육욕의 붉은 빛이 아니라, 녹색 사유인 것이다. 그린이고 최소한 연녹이다. 꽃이 피고 지고, 새싹이 나올 때는 온갖 갖가지 색채로 세상에 수를 놓다가 성긴 잎의 단단한 청년이 되는 식물성인 것이다. 그리움은 자란다. 그리움이 자라는 방식은 수경 재배나, 조직 배양이 아니다. 철저하게 토경 방식이다. 흙이 아니면 그리움은 자라지 않는다. 흙에서 수분과 양분을 받아 먹는다. 흙에 단단히 뿌리를 내려야만 그리움은 바람을 맞이할 수 있다. 햇빛을 받아 먹을 수 있다. 있는 듯 없는 듯 자리를 차지하기도 하고, 비어 있기도 한다. 그러면서 조금씩 숨을 쉰다. 엽록소처럼 아주 소중한 삶을 이룬다. 그리하여 그리움은 녹색 사유로 거듭 단단해진다. 토해 낼 게 없어진다.
<2006. 8. 24, 온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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