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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048-수심연기收心煉己

by 나무에게 2013. 12. 23.

수심연기收心煉己  

 

거둘 收
마음 心
불릴 煉
자기 己

 

의식을 거두고 자기 자신을 불린다

 

1. 공부에 들어가기

 

가. 연심煉心 - 오로지 하나를 염두에 두고 정각正覺을 견지한다. 잡된 생각을 소제하고 일념으로 돌아가서 고요하기를 극도에 이르게 환허입정還虛入定한다. 삼심三心(貪. 瞋, 痴)을 제지하고 사상四相(생로병사)을 멸진한다. 심지가 맑아져서 性인 天이 청량해지기를 기다린 다음에 응신하여 기혈에 입정해 두고 일심으로 묵묵히 지킨다.

하나의 생각, 하나의 의념이 연심의 기본이다. 성천이 청량해지기를 기다린다 했는데, 무엇으로 청량해짐을 알 것인가. 역시 의념으로 잡아 들어가야 한다. 나아감과 정교함에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정교해지지 않는다면 나아감이 나을 것이다. 입정이라니, 아주 어려운 수련의 단계다. 다만 심지가 맑아지는지를 내관할 따름이다.

 

 

나. 합벽閤闢하는 기틀

 

++ 쪽문 閤, 열 闢

 

++ 기틀 : 내쉬는 숨에 기의 기틀이 열리고 들이쉬는 숨에 기의 기틀이 닫힌다. 신을 기혈에 두고 호흡의 기를 고요히 바라본다. 독맥을 경유하여 홍일紅日이 정수리로 상승했다가 다시 임맥을 따라서 호월皓月(밝은 달)이 하단전으로 내려간다.

독맥으로 붉은 해가 임맥으로 밝은 달이 운행한다고 했다. 뜨겁고 부드러운 기운의 흐름이다. 소주천 이후 뜨겁고 부드러움으로 나누어져 있었던가? 그냥 하나의 주천이지 않은가. 하단에 호흡의 기를 고요히 바라보는 일이 그만큼 중요한 것임을 새삼 인지한다.

 

한번을 호흡하거나 백 번 만 번을 하더라도 그 호흡의 수를 헤아리며 그 수에 따라 합벽하는 차질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 수를 세어 가면서 섭심攝心(몰아잡을 攝)하되 일념도 생기지 않고 의意가 흩어지지 않으면 심식이 상의하여 동행한다.

수를 세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의식을 몰아잡기 위함이라. 하기야 명상에 들면 온갖 잡념이 꼬리를 물고 놓치면 곧바로 잠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수를 세면서 수련의 의념을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이다.

 

다. 옛말

 

진의眞意가 쉬지 않고 왕래하며 지이불수知而不守(알면서도 인식행위를 하지 않는 것)하는 것이 공부다. 또 저의두두著意頭頭(생각 하나하나마다 뜻을 내는 것)하면 잘못되는 것이고 무위無爲 또한 공空에 떨어진다. 유심有心한 데서 무심無心으로 화하며 심체心體를 공동허령空洞虛靈하게 해두면 생멸이 없어진다.

알면 안다고 해야 하고, 조그만 깨달음 하나에도 뜻을 부여한다. 지금까지 삶이 그렇다. 앞으로 삶이 이의 생멸을 없애는 데 있다. 유심에서 무심으로 공동허령으로 가야함이다.

 

라. 망념의 제거

 

정각을 견지한다. 정각한 뒤에는 자연히 무념해진다. 무념이 적습積習하여 순숙純熟해지면 꿈이 없어진다. 꿈이 없어지면 심사心死해지고 신이 영활해진다. 무릇 心을 단련하지 않으면 神이 부정不定하며 성광性光은 요동하고 만다. 또 意가 단련되지 않으면 情(감정)이 죽지 않으므로 명근命根이 견고해지지 않는다.

정각-무념-적습-순숙-꿈없어짐-심사-신의영활

 

마. 연기하는 공부

 

심두心頭의 화火를 모조리 소멸시켜야 한다. 무궁한 욕식을 소진시킨다. 일진一眞(한 가지 참됨)을 안으로 지키고 곳곳의 만 가지 인연을 모두 비운다. 성천性天이 청량해져서 비로서 환몽歡夢에 미혹되지 않는다. 이것이 연기煉己하는 공부다. 환단을 단련하기 전에 먼저 연기부터 하라. 연기가 순숙해진 이후에 환단還丹하게 된다.

하나를 남기고 만 가지를 비우라. 환몽에 미혹되지 말라는 말은 쓸데없이 즐겁지 않아야 함을 말한다. 남기는 한 가지는 밋밋함이다. 그 밋밋함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을 기꺼이 바라보며 익힌다. 자기를 태우는 수련은 결국 순수함이어야 한다. 소멸시켜야 함을 알면서 미혹하여 소멸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 처지인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