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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056-박이화, 고전적인 봄밤

by 나무에게 2013. 12. 23.

고전적인 봄밤 / 박이화


송도 기생 황진이의 사생활은 만고의 고전인데 신인가수 백모양의 사생활은 왜 통속이고 지랄이야. 내가 보긴 황진이는 불륜이고 백모양은 연애인데 그렇거나 말거나 나는 가을밤 황국같은 황진이도 좋고 봄밤의 백합같은 백모양도 좋은데 좋기만 한데 왜! 이 시대엔 벽계수를 대신해 줄 풍류남아가 없고 지랄이야. 명월이 만공산 할 제 달빛 아래 휘영청 안기고픈 사나이가 없고 지랄이야. 아, 일도창해 하면 다시 돌아오기 어려운 길 어째서! 이 몸과 더불어 유장하게 한 번 뒤척여 볼 박연폭포 같은 사내가 없고 지랄이야.

봄밤은 고전인데......
이화에 월백하는 봄밤은
만고강산의 고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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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는 왜 노란국화야, 그것도 가을밤에. 백모양은 왜 백합이야, 그것도 봄밤에. 꽃도 밤에 봐야 제 맛이라는 건가. 달빛 환한 밤이 되면 꽃은 뒤척이기도 하고 휘영청 안기기도 하고 이리 뒤척이고 저리 꿈틀대며 바람만 불어도 훌쩍 꺾어질 듯 간들거린다. 지랄이야 사나이가 없고 사내가 없어서가 아닐테지. 낮과 밤이 내외하여 서로 관계하지 않기 때문일테지. 그 사나이와 그 사내 사이에는 여름비에 불어난 냇물이 깊고 묵직하게 가로막고 있는 것이지. 그래야 저 끝 쯤 흘러 흘러 박연폭포 비슷한 소리를 낼 것 아니야. 우거지게 쏟아낼 것 아니야. 소쩍새야 너는 알겠니. 나는 알 것 같은데. 그치 않냐?
2006. 11. 13
(온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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