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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058-이승희, 그리운 그대.2

by 나무에게 2013. 12. 23.

그리운 그대·2 / 이승희


낮에는 보이지 않던 길이 밤이면 먼 별빛으로 보일 때가 있다. 그런
적이 있다 정신없이 걷다 뒤돌아 보니 지나온 길이 없을 때, 난 어디
를 걷고 있었던 것일까. 살다 보면 길없는 길에 서 있기도 하는 것일
까? 그러나 이미 그때는 오도가도 못하는 삶이 있을 뿐이고 누가 말
한다. 움직이지마 너는 지금 움직이면 깨지고 말 얼음판에 서 있어.
봄밤은 왜 그리 달큰한 냄새로 다가오는지, 그리움은 순식간에 참
혹한 것이 되어 먼지처럼 자욱하고, 본드 냄새를 풍기며 눕는 시간
위로도 별들은 뜨는구나, 누가 그 별들에 선을 그어 가슴 아픈 기억
을 만드는가, 내게는 언제나 한겨울을 살아낸 무겁고 낡은 외투 한
벌이 걸려 있을 뿐인데.
아름다운 것들도 버려야 할 때가 있듯이 서러운 것들, 아픈 것들도
버려야 할 때가 있을 것임을, 다만 그것이 버려지면서도 아름다울 수
있기를 그리하여 삼천 년 지난 후에 석탄이 되는 나무들처럼 제 안에
아름다운 불씨를 깃들여 가기를 내 눈물 섞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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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 년 지난 후에]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은 버릴 줄 아는 것이다. 시인은 그렇게 말한다. 누구에게나 제 안에 부처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누구나 똑같은 부처가 아니라는 것이다. 눈물 섞인 부처, 웃음 섞인 부처, 아픔 품은 부처, 기쁨 지닌 부처. 모두 큰 별나라에서 지구로 달려온 그리움의 산물인 것이다. 서럽도록 아린 통찰이 깔려 있다. 얼마나 아팠을까. 그의 그리움은 그리고 내가 지닌 그리움의 아득한 지평선 저 끝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소나무 이파리 같은 정경이다. 그리움의 정경이 너무 아득하고 감당하기 어렵다. [움직이면 깨지고 말 얼음판]에 그리움이 달랑 놓여 있다. 잡으러 달려가려는 데, 여의치 않다. 집어지지 않기에 그리움은 빛난다. 그래서 별과 그리움은 동류항을 이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그리움의 낡은 외투가 펄럭이고 있을 것이다.
2006. 11. 18
(온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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