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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064-안현미, 하시시

by 나무에게 2013. 12. 23.

하시시 / 안현미


바람이 분다
양귀비가 꽃피는 그녀의 옥탑방
검은 구두를 신은 경철이 어제, 다녀갔다
하시시 웃고 있는 여자

환각을 체포할 수 있는 영장은?

검은 구두를 신은 경찰이 오늘, 다녀갔다
사랑은 떠나지 않아도 사내는 떠났다
하시시 울고 있는 여자
검은 구두를 신은 경찰이 내일, 다녀간다
하시시 피어오르는 향기

그림자를 체포할 수 있는 영장은?

마리화나 같은 추억
하시시 바람이 분다
아편과 같아 사내는,

중독을 체포할 수 있는 수갑은?

그녀의 옥탑방
하시시
양귀비꽃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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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시]라는 말은 바람의 부는 질량과 어울리는 말이다. 그래서 [바람이 분다]고 했는지. 바람은 참으로 많은 것을 안겨 주는 무형의 유형이다.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바람은 그 고요 속을 비집고 들어와 자리한다. "나, 바람이야."라고 건드린다. 때로는 바람이 이끄는대로, 혹은 거슬러 거친 호흡을 날리며, 그 바람에게 가까워지고 멀어지곤 한다. 이 시를 관통하는 것은 바람이다. 바람의 이미지를 [하시시]라고 했다. 그리고는 양귀비를 기르는 옥탑방, 검은 구두를 신은 경찰, 그리고 사내가 등장한다. 추억은 마리화나 같고, 사내는 아편과 같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러니까 [하시시]는 환각 이후의 옥탑방일 수도 있다. 꿈을 꾸는 사람에게 이미지는 중요하다. 시를 읽고 나면 떠나지 않는 몇 개의 아이콘들이 꽃처럼 날린다. 나도 얼른 [하시시]되고 만다. 나는 현실에서 담배라도 뿜어야겠다. 무궁화밭으로 나간다. 나를 막을 사람 또한 없다.
(2007년 2월8일 온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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