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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084-김종미, 고등어 좌판

by 나무에게 2013. 12. 23.

고등어 좌판 / 김종미

 

 

구울 거요? 지질 거요?
내려칠 칼을 든 여자와
좌판의 고등어가 두 눈 빤히 뜨고 나를 보고 있다

 

염라대왕이 이런 기분일까

 

네 영혼을 지글지글 구워주랴? 아니면
얼큰하게 지져서 이 지옥을 기름지게 할까

 

그러고 보니 내 몸이 지옥이다

 

이 지옥 속에 감금된 영혼을 극락에 풀어놓으려고
부지런히 들락거린 극락전에 소금 친다
염라대왕에게 눈도장이라도 찍어놓으려고
개미 뒷다리라도 밟을까 자비로운 절 마당에 소금 친다
말려 먹고 익혀 먹고 회쳐서 먹고
먹고 먹은 죄 오늘 참회합니다
입에 침도 안 바른 혀를 가지고
극락왕생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손바닥에
싸락눈 퍼붓듯 소금 친다

 

아줌마, 까마귀처럼 깔끔하게 영혼을 파먹을 수 있게 해 주세요
네? 내 목소리가 불길하게 들린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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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판의 고등어를 마주하고 있을 풍경이 저녁 노을을 비껴가고 있다. 소금을 치면 영혼이 부식하지 않을까? 그럴수만 있다면 내 등짐에 소금을 지고 다니겠다. 어쩌면 내 구부정한 등줄기에는 소금기가 늘 허옇게 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소금 쳐야 할 때 소금을 아낀 게 분명하다. 먹으면서 늘 허허롭다. 무엇을 먹어야 할지를 생각해내지 못하기에 더욱 그렇다. 뭐가 먹고 싶으냐?고 물을 때 나는 할 말을 다하지 못한다. '아무거나'이다. 그 아무거나로 살다 보니 대접을 받지 못한다. '좌판의 고등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을 때 나도 세상살이에 제법 군살을 보탤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김종미 시인은 심했다. 영혼을 '구워줄까' 아님 얼큰하게 '지져줄까'로 굽고 지지는 좌판의 고등어를 내 영혼으로 치환한다. '이 지옥을 기름지게 할까'라고 슬쩍 너스레를 친다. 더 얼마나 기름져야 세련되게 세상을 살 수 있을까. 속지 않고 살 수만 있다면 기름지지 않아도 살만하지 않을까. 아니, 세상을 기름지게 속이는 현상이 내 눈에 보이지만 않아도 살만하지 않을까. 이런 내 생각들에게도 김종미 시인의 소금을 얻어 후딱 뿌렸으면 싶다. 깔끔하게 영혼을 파내갈 까마귀 하나 사귀든지, 오늘쯤 좌판을 찾아 고등어라도 뜯어야 살 것 같은 하루다. (2009.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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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관리신문 201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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