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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086-함순례, 꼴림에 대하여

by 나무에게 2013. 12. 23.

꼴림에 대하여 / 함순례


개구리 울음소리 와글와글 여름밤을 끌고 간다
한 번 하고 싶어 저리 야단들인데
푸른 기운 쌓이는 들녘에 점점 붉은 등불 켜진다

내가 꼴린다는 말을 할 때마다
사내들은 가시내가 참, 혀를 찬다
꼴림은 떨림이고 싹이 튼다는 것
무언가 하고 싶어진다는 것
빈 하늘에 기러기를 날려보내는 일
마음 속 냉기 당당하게 풀면서
한 발 내딛는 것

개구리 울음소리 저릿저릿 메마른 마음 훑고 간다
물오른 아카시아 꽃잎들
붉은 달빛 안으로 가득 들어앉는다

꼴린다, 화르르 풍요로워지는 초여름밤

- 2005 "오늘의 좋은 시"(푸른 사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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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하고 싶어진다는 것을 꼴림이라 했다. 시인에게 꼴림의 세계는 모성의 세계다. 꼴림은 생명의 중요한 단서다. 여성성이든 남성성이든 살아있음과 다름 아니다. 꼴림이라는 말을 세계 전면에 살포하고 있다. 그것은 푸른 기운 쌓이는 들녘에 붉은 등불을 켜는 행위이기도 하다. 의식에 갇혀 있는 물상이 아닌, 튼튼한 사지를 가져 끊임없이 움직이는 동태로서의 놀림이다. 의식이든 몸이든 내가 보는 물상이든 떨리는 행위이다. 떨림의 세계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 내가 먼저 떨지 않으면 저 쪽에서 내 쪽으로 먼저 놀림의 현이 튕겨진다. 어느 쪽이든 떨림의 선후를 따지지 않는다. 징조가 오면 함께 떨면 그만이다. 빈 하늘에, 마음 속 냉기에, 개구리 울음소리에, 물오른 아카시아(아까시나무)에, 붉은 달빛에. 화드득 꼴린다. 그래서 평화로워진다. 놀림이 먼저이고 떨림이 따라 나선다. 생명 안에는 놀림과 떨림이 있어서 꼴리게 되는 게 분명하다. 2006. 11. 15 (온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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