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무와함께

가벼움, 혹은 지리멸렬한 하루

by 나무에게 2013. 12. 24.

가벼움, 혹은 지리멸렬한 하루 / 온형근


맞짱 이후, 난 가볍고 지리멸렬한 한나절을 부여받는다. 처음에는 나 혼자, 그리고 2명, 3명, 4명, 5명, 그리고 6명까지, 아, 나중에 화홍문에서 1명 추가 해서 총 맞선 사람은 나를 포함하여 7명이다. 나를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 기실 나와의 맞짱이 가장 벅찼다. 졸린 일만 없다면 나는 기꺼이 맞짱의 원류로 행세할 수 있다. 그런데 내게 졸음은 이를 만류하고 만다. 졸음만 없다면 가히 탁월한 경지로서 인류에 두고두고 희자될 상황이다. 잠깐 졸릴 때는 약한 모습 보일 수 없어 생각이 깊어진다.

소변은 기본 상식이다. 술 심부름도 괜찮다. 괜한 안주 충원도 좋은 방법이다. 새 사람을 불러 내고 분위기를 확 바꾸는 것도 좋다. 새 사람을 불러 내는 일은 불러 내는 과정에서 자존심이 무척 상하지만, 일단 불러 낸 후에는 나온 사람이 더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한다. 문제는 이미 흥이 도도해진 사람의 기운을 나중에 나온 사람이 감아 내어 기운을 꽉 막히게 함이다. 이럴 때는 흥의 흐림이 바닥에 머물고 만다. 짧은 시간이지만 긴 침묵이다. 어쩌면 내공을 끌어 모으고 있는 시간일지 모른다. 이내 회복되어 기본 공력을 사용하는데 흐트러짐이 없다.

그러니 맞짱은 맞짱에 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마음가짐에서 맞짱의 묘미가 있다. 잠시 흐트러졌음에도 불구하고 맞짱 내내 의연해질 수 있다. 보이차를 몇 주전자 마신 후에 나선 길이라 유연한 몸의 행차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막걸리를 조금만 마셔도 화장실을 사용한다. 대단한 행차다. 몸을 낮추어 들락거리는 행차가 몸을 가볍게 하고 귀하게 하더라. 맞짱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음이니, 그렇지 않은 마주 앉은 사람들은 그 속을 헤아릴 수야 있겠는가? 혼자 딴 세계를 들락거리는 것도 괜찮다.

덥썩 화제에 끼는 것은 금물이다. 산을 오르듯 서서히 화제에 다가가야 한다. 처음에는 서로들 화제를 사용하고자 입술을 들먹거리지만 그때를 인내하면 차례가 온다. 이는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즐거워 했던 내 자신의 행위에 거리를 두기 위함이다. 얼마나 큰 수확인가. 말의 오고감에 거리를 둘 수 있다는 자체가 말이다. 결국 튀어나오지 않았는가. 국외오지여행계를 만들어내지 않았는가. 월 10만원으로 6명의 회원이 확보된 상태다. 그렇다면 함께 하는 여행을 위해서라도 말을 줄여야 한다.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말을 위해서 말이다.

오늘은 몹시 가볍다. 그래서 지리멸렬하다. 보이지 않던 시간이 어제와 오늘 보인다.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나는 이제 글을 쓴다. 그냥 써댄다. 잠시 짧은 시간이 주어진다면 입술을 실룩이는 대신 글을 쓸 것이다. 이것은 분명 나와의 여행이며 대화의 출발점이 된다. 놓치고 스치는 것들을 산발적으로 남긴다. 남겨서 누가 될 것임에도 주절대기로 한다. 쓰는 동안 귀하고 예쁜 행위라는 것을 절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쓰고 난 후의 이 글은 내 것이 아니다. 나는 씀과 동시에 내 버린다. 지리멸렬한 하루를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