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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말하고 싶은 사람, 말하기 싫은 사람

by 나무에게 2013. 12. 24.

말하고 싶은 사람, 말하기 싫은 사람 / 온형근


동기들과 막걸리를 마실 때만해도 나는 사람 좋은 얼굴로 미소지었다. 별로 할 이야기도 없더라. 자리를 옮겨 식사를 하면서도 역시 입이 봉하여지더라. 그런데 꼭 두 사람만 만나면 왜 그리 떠들고 싶은지 모른다. 그 두 분이 내게 친형처럼 여겨져서일까. 아님 말을 하게끔 내 속을 건드리며 유도해서일까? 아무튼 결국은 후회할 말들을 하고 말았다는 자책이 다음날 아주 깊이 든다. 어떤 이가 말할 때 나는 입을 다문다. 어떤 이가 말할 때는 신이 난다. 거의 온도가 맞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도가 맞는 사람을 만나는 날은 술맛도 기가막히다. 왜냐하면 습도까지 맞기 때문이다. 적당히 미풍도 불고, 후덥지근해지면 강한 바람도 쏘고 하는 맛이 남다르다. 그런데 두 분을 만나면 세트로 뜨거워진다. 온도는 맞는데 고온에 적응이 잘 안되기 때문일까. 아니면 저온이라서 그럴까. 그러고 보니 그렇다. 차분해지고 건조해지고 객관적인 태도로 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격정적이고 축축하며 주관적인 태도로 만나는 사람들은 적어졌다. 건조한 만남은 상처가 없다. 격정적인 만남은 상처가 깊어진다. 나으려고 곪아터지는 것일까. 무척 오래도록 나를 힘들게 한다. 그때 그 상황에서 왜 나는 차분해지거나 건조해지지 않았을까? 그러한 나의 자의식은 무어란 말인가. 그렇다고 꼭 좋은 온도와 습도와 바람까지 가진 사람만 만날수도 없지 않은가? 안그런가요. 술 마실 때 꿈만 꾸면 좋겠는데 술 마실 때, 왠 그리 현실적인 이야기만 쏟아질까. 그럼 그게 그리 속상하면 그 두 분을 피하면 되잖니 멍청아. 어떻게? 그래도 되겠다. 그럼 그 두 분도 없으면 이젠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쏟아내냐? 저런...아예 그런 이야기를 생산해내지 않으면 되잖아. 그렇구나. 재생산에 관여하지 않으면 되겠구나. 아 이 귀한 깨달음 하나 품는다. <꿈꾸는 술마시기>로 일관하는거야. 레츠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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