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를 입질하다 / 온형근

꽤 오래 걸릴 것이라는 생각이다. 내 사는 곳과의 물리적 거리 말이다. 그런데 사실은 정서적 공간감이었다.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곳에 남양주가 있다. 용인보다 가까운 거리다. 물론 행선지만을 기준으로 그렇다. 너무 이르게 도착한다. 다산 유적지의 이정표가 나를 이끈다. 이정표를 향해 나간다. 길을 잘못 들은 것이 분명하다. 양수리의 전경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흐린 시계를 타고 눈맛이 양파를 깔 때처럼 아리다. 수면은 흙탕질이다. 한참 지나쳐서 보이지 않지만, 이미 지난 곳 어디쯤에 다리 공사가 있었다. 스친 것이다. 흙탕물로 덮인 강물은 왠지 생명력이 있어 보인다.

보이기에 멋진 강물이 있다. 푸른 빛을 내는 강물이 유유히, 도도하게 흐를 때, 격정적이었던 내면이 잔잔해지는 것을 안다. 세상에 볼 것이 너무 많아 갑자기 삶이 더욱 진지해진다. 다산 선생이 이 근처에서 말년을 보냈다. 추사께서도 노구를 이끌고 과천에서 이곳까지 말년에 오고 가시며 시대의 논의와 영적인 삶을 나누셨다. 오고가는 차량이 늦어진다. 출퇴근과 관계없는 시간이지만 이 길이 서울로 들어가는 또 하나의 중요한 관문길임을 알 수 있다. 차를 되돌린다. 돌아갈 시간과 계산상 맞아 떨어진다.

강의를 끝내고 나를 안내한 분과 점심을 먹는다. 남양주 토박이처럼, 아니 오늘 보았던 양수리의 흙탕물처럼 생명력이 있다.
'남양주는 참 평화로워 보인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끼리 서로 아는 경우가 많아요.'
'농사 짓는 사람들이 꽤 많아 보이네요.'
'이제는 많이들 그만 두었지만, 아직도 곳곳에 많고, 시골스러운 곳이 천지에요.'
'많이 돌지 않았지만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었네요.'
'술을 좋아하시나요?'
'아, 예.'

낮술을 마신다. 버스 타는 곳까지 안내해준다길래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대접 받는 기분을 만끽한다.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간섭 받아 기분 나쁜 것은 아니었다. 이유 있는 항변이라면 맹렬한 낮더위에 질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버스는 5분 후에 온 게 아니다. 정확히 15분 정도를 도로의 차량 소음과 열기 앞에 나를 내몰았다. 수원과 남양주를 연결하는 버스는 교통카드가 허용되지 않는다. 지갑을 털어서 표를 구매한다. 천원짜리 한 장이 달랑 지갑을 지킨다. 왠지 자주 들릴 것 같다는 예감이다.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쳐 되돌아 오는 행태를 보면, 제대로 하차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