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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술수와 상처

by 나무에게 2013. 12. 24.

술수와 상처 / 온형근



그릇의 크기에 따라 담기는 정도가 다르다. 악기의 종류에 따라 내는 소리가 다르다. 서로 다르다 하는 것들 중 가장 극명한 것은 사람이다. 서로 다른 것들을 엮고 묶어 내려는 것은 분석이다. 분석은 특정 틀을 가진다. 특정 틀은 이데올로기일 수 있다. 크기에 상관없이 이데올로기는 작용한다. 집단의 크기와 종류에도 불구하고 작용한다. 어떤 틀을 가졌을 때 바라보는 시각은 자신의 정체성과 종류를 같이한다. 그래서 틀을 버린다는 것은 어렵다.

버려야 한다고 생각할 때쯤이면 이미 굳건한 틀을 지닌 상태이다. 그래서 버리는 게 아니라 방기(放棄)가 된다. 여기서 관계가 작용한다. 관계를 깨는 것이 일차적인 비움의 철리(哲理)다. 그래도 살아있음의 관계가 남는다. 살아있음의 관계에 놓여 있기에 다시 그릇의 크기로 돌아온다. 그릇이 작으면 조금만 덜어도 많이 비우게 된다. 그러나 금방 찬다. 그릇이 크면 많이 비워도 많이 남게 된다. 그러나 다시 채우는 데는 더디다.

우회와 직진이 만난다. 전략과 진검승부가 만난다. 전략은 술수를 채우고 진검승부는 상처를 채운다. 둘 다 특정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지향의 속성을 가졌다. 담기는 것이 술수이든 상처이든 어떤 시각과 관점에서 서로 다른 이치를 드러내며 환영을 받거나 뱉어지게 된다. 원초적 관계의 기본이다. 나이는 전략을 요구하는데 몸은 진검승부를 원한다. 몸은 전략으로 다스려야 하는데 진검승부가 극성을 이룬다. 세월이 겉도는 셈이다. 후두(後頭)가 종일 울울(鬱鬱)하다. 과연 진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