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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나무나 심지

by 나무에게 2013. 12. 24.

빈터가 생기면 '왜 놀리지?' '나무나 심지'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땅에 왜 나무가 심겨지지 않았는지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 또는 시간동안 나무나 심지라는 생각은 삼척동자까지 생각해 낼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멘트이다. 그런데 왜 그 자리에 '나무나 심지'가 되지 않았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일단 지질이 나무심기에 적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곳은 예전에 꿩장을 하던 곳이고, 그 이전에는 논이었다. 물이 차 있는 곳이다. 한때 그곳에 내가 나무를 심기도 하였다. ㄱㅈㅇ에게 물어봐도 알 수 있는 기억이다. 내침김에 그에게 통화 한 번 해 주어야겠다.

두번째 그곳에 나무를 심으면 나무 심은 자가 그곳을 다니면서 관리하기에 어렵다. 심을 곳은 그곳이 아니다. 다른 곳이다. 그곳은 따로 학생 수업을 몰아서 작업해야 하는 그런 위치에 있다. 그곳의 나무들을 정리하고 회화나무나 왕벚나무를 심을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곤란하다. 일단 4월3일 식목행사에 소요되는 나무를 빼고 나서 생각할 일이다. 접목을 했다는 황금회화나무라는 얼토당토하지 않은 나무는 접목에 실패한 나무에 비해 자람이 불량하다. 모든 나무들에게 인간의 생각은 욕심이다. 나무의 형질을 함부로 손대는 일은 가급적 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회화나무의 가지가 노란색이면 그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이 줄서 기다릴 것이라는 생각의 출발부터 임의적이며 부적합하다. 그곳을 정리하여 다른 나무를 선정하고, 식재한 후에 포장정리를 마쳐야겠다.

빈땅에 생기면 '나무나 심지'하는데, 그 나무는 누가 심는 것인가? 어떤 나무를 심던 비용 발생을 생각해야 하고, 심은 나무가 커졌을 때는 그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또 생각해야 한다. 아직도 엊그제 일이 생생하다. 사슴피, 또는 녹용피를 들고 회사까지 찾아왔다는 말을 하는 사람과, 그와 회의를 하는 자리에 첫마디로 '더 큰소리 치겠네'하는 말도 되지 않는 심보를 가진 사람, 그러면서도 여태까지는 안그런 척 의연한 척하며 버티고 살았다는 속심을 들켜버린 것을 안타까워한다. 그런 사람이었다.

인사를 하고 점심을 먹기 전, 쏘시지 등을 사러 나서는 외부 손님도 얄미웠지만, 그 순간 자신은 말을 풀면서 자리를 피하는 영악함에 놀랐고, 거기서 나는 얼굴이 부끄러웠고, 그들이 각자 계산을 하는 자리에서 엄청나게 불편했다. 속으로 점심은 내가 사야겠다는 생각으로 상황을 스스로 정리한다. 늘 그런 식이었다. 나는, 내가 먼저 나서지 않아도 되는 많은 경우들에 스스로 불편하여 그런 식으로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여 그 다음이 영 더부룩하여지기 때문이다. 역시 다시 전화를 하니 왔다. 식당 장소를 선정하고 그곳으로 모시고 다녀왔다. 먼저 계산을 하기도 했지만, 당연히 내가 내야 하는 것으로 여긴 것은 그 친구였다.

그러면서 그가 하는 일을 떠올린다. 그의 그런 일은 고유 업무인가를 한번 짚어주어야겠다. 누가 업무를 준 것이며, 왜 그가 해야 하는 일이고, 그 일에는 어떤 매력이 있는가를 따져주어야겠다. 아마 부수입이 없다면 그는 그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ㄱㅅㅎ에게 슬쩍 넘지시 물어보아야겠다. 아니면 ㅇㄷㅇ에게 자세히 물어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조만간 한 번 터뜨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가 내게 속심을 보인 '더 큰소리 치겠네'는 지금까지 자신이 어떤 일을 하면서 해 온 자신의 주변상황이고 심리 상태임을 알게 되었고, 나는 그말에 무척 기분이 상했다. 댓가를 바래고 일한 사람과 그런 것과 상관 없이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사람과의 간격에서 나는 지금 배알이 뒤틀려 있다. 곧 터뜨려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