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에 적석진에서 노닐며 / 나옹 혜근
발걸음 가는 대로 노닐 때는 한 밤중이었으니 ---------- 나옹 선사의 성은 牙씨이다. 드문 성이다. 이름은 원혜, 그러니 아원혜란 속명을 가졌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로 시작되는 구절이 나옹 스님의 글이다.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하였다. 그 여주 신륵사도 대운하로 묻힌다. 천 년이란 시공이 아무 흔적 없이 가라앉는다. 나무 한 그루조차 묻히는 게 안타까워 옮겨심은 적이 엊그제다. 물은 그렇게 쉬지 않고 노닌다. 말없이 흐르는 물길을 사람이 간섭한다는 것은 물길을 사바세계로 넘치게 함이다. 한번 넘치면 만들어진 인공의 물길은 자연의 물길 앞에서 맥을 쓰지 못한다. 그저 자연 앞에서 형님! 하면서 무릎 접을 일이다. 눈 내린 산행은 마음을 버리게 한다. 지니고자 함에도 지닐 수 없게끔 한다. 그냥 아무 생각 없어 상쾌해진다. 사방이 고요하다는 것은 텅 비었다는 말과 같다. 텅 비어 막힘 없이 결도 없이 달라붙는 것들로 분주하다. 그래, 바람이나 숨결 정도는 막을 도리가 없겠지. 거기다가 달빛같이 범접하거나 가로막을 수 없는 것들 앞에 서면 흔들림조차 사치다. 한밤중의 산행은 존재조차 미약하다. 나무 등걸에 기대어 달빛의 교교함에 한참 이끌릴 수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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