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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낙향과 은일에서의 명리

by 나무에게 2013. 12. 24.

경남 함양을 중심으로 경관을 경영한 사람들이란 주제로 답사를 다녀왔다. 처음 들린 곳이 거연정이다. 이곳 화림계곡의 정자들이 밀집한 것을 보면, 이곳 역시 여름 한철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여건을 지닌 곳임을 알 수 있다. 본래 화림동천(花林洞天)에는 팔담팔정(八潭八亭)이 있었으나 서하면 봉전리에 거연정(居然亭)과 거연정 150여m 아래 군자정, 또 그 아래 임란공신 동호처사(東湖處士) 장만리의 은둔처 동호정만 남아 있다.

거연정은 화림재(花林齋) 전시서(全時敍)가 모옥(茅屋)으로 지어 강학한 곳이었다. 화림재는 1640년경 유림의 공의로 채미헌 전오륜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창건된 서산서원(西山書院) 곁에 모옥을 짓고, 주자가 지은 무이정사(武夷精舍)의 시 중 '편안한 나의 천석이로다(居然我泉石)'라고 한데서 정자 이름을 취하였다.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이 지은 거연정 중수기문에는 중추부사를 지낸 화림재 전시서가 병자호란 이후에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은둔하여 거연정을 짓고 강학했던 곳이란 기록이 전한다.

옛사람들의 경관을 경영하는 기본은 풍광이 좋은 곳에 정자를 짓고 음풍농월 또는 강학을 중심으로 여론을 형성하고 토론과 만남을 통하여 학풍을 완성하는 곳이다.  그러나 이곳 정자들은 개인 재산으로 운영되고 있다. 문중에서 관리하는 것이라 국가의 예산 지원이 부족하다. 훼손된 정자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보다 정교한 지원 계획에 의거 자자손손 이어질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 함에도 열악한 환경을 가감없이 보이고 있다. 전씨 문중에서는 이러한 정자를 만들어 경영한 선조들의 큰뜻을 새기기에 자랑스럽기만 하겠지만, 이들만의 소유이고, 이들만이 이곳을 유지관리하여야 할 것일까?

화림계곡은 바위가 많다. 너럭바위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크기의 돌들이 계곡에 산재한다. 너럭바위와 바위들이 섬을 이루는 지점의 경관 포인트에 거연정이 자리한다. 거연정에서 사방 계곡의 물흐름과 주변 풍광을 볼 수 있고, 반대로 정자 바깥에서 정자를 바라보는 기막힌 풍경은 거연정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이곳 함양 일대는 일두 정여창 선생의 흔적이 있고, 조선시대의 사림의 일상이 스며 있다. 김종직을 필두로 하여 이곳 사림들의 험난한, 그래서 더욱 선비의 기상을 배양하며 살았던 세월이 정자 문화로 되살아난다.

경관을 경영한 사람들의 시대적 고뇌와 정신을 오늘의 사람들이 음미할 수 있어야 삶이 보다 풍요로워질 것이다. 여름 한철의 더위를 식히는 곳으로 이곳이 각인되어서는 안된다. 여행의 한자락에서 이곳에서 강학을 해야만 했던 조영자의 의지를 엿볼 수 있어야 한다. 물이 불어나면 정자가 위험할 것처럼 위치하여 있지만 루처럼 정자를 지탱하고 있는 아래층은 물이 쉽게 빠질 수 있도록 바위가 경사로 이어졌다. 왠만한 물은 바위 중 높은 곳에서 막아내고, 그나마 넘치면 곧바로 경사진 암반을 타고 빠지게끔 구상되었다. 그럼에도 곳곳에 있는 바위에 빨간색으로 이름을 새긴 것이 눈쌀을 찌푸리게 한다. 가는 곳마다 이름을 새기는 행위를 보면서 은일과 낙향에서도 명리가 앞선다는 생각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한국주택관리신문 2009년 12월호 송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