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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낯선 자리와 풍경

by 나무에게 2013. 12. 23.

낯선 자리와 풍경 / 온형근

낯선 자리에 앉는다는 것이 서툴다. 가끔 열차에 오르면 이 자리가 익숙한 자리인지 낯선 자리인지 가늠하기가 곤란해진다. 그 날의 심리 상태에 따라 다르다. 보통은 익숙한 자리라 생각하며 잠시 책을 꺼내 읽다가 잠을 청하는 것, 그리고 시간을 재면서 얼마나 걸릴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억지로 낯선 자리로 만드는 방법도 있다. 잠시도 몸을 쉬게 하지 않으면서 낯설게 긴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책을 읽는 것보다 글을 교정하는 일이다. 몇 시간이든 눈이 침침해질 때까지 글을 교정하면서 열차에 앉아 있다면, 주변 모두가 보이지 않는다.

풍경은 없어지고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몰두까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끄적이고 있는 손과 펜만 오고 가고 시야를 잔뜩 차지하는 것은 까만 글들이다. 정신적 몰두라는 것에는 어떤 장소와 어떤 풍경에서도 가능하겠지만, 실제로 몰두의 상황에 접어드는 일이 이것 저것 걸리는 게 많다. 가장 쉽게 빠르게 몰두의 상황에 접어들어가는 방법 중 하나가 열차에 오르는 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여행이 아니라 완벽한 편집의 시간이다. 그러나 외지라는 적적함은 술을 마시게 하고 돌아오는 열차는 교정도 편집도 되지 않는 낭패가 있다.

더 좋은 몰두의 상황을 찾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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