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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늙은 개

by 나무에게 2013. 12. 23.

오랜만의 산책이다. 출퇴근의 중압에서 벗어나려고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시도했고, 발을 내디딘 셈이다. 새벽의 여명을 볼 수 있는 호젓한 산길의 유혹에 나를 맡긴다. 좀 더 서둘러야 하는데 늦장을 부린 것은, 명상을 한 줄 남기려 함이었다. 꼬박 1시간이 걸리는 산책이다. 뛰고 걷고 하는데, 산 입구 다다라 섬찟하며 가슴이 뛰었다. 늙은 개, 그것도 길 가운데 가로로 폼을 잡고 앉아 있는 것이다. 동그란 배수로 뚜껑 철제를 깔고 앉아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있다. 하얀 진돗개로 그전에도 더러 본 것 같다. 너무 늙은 티가 난다. 몸집도 진돗개치고는 아끼다견 크기이다.

미동도 않는다. 차라리 사람을 보고 뒷걸음을 치면서 짓고 하면 좋으련만, 시선만으로 나를 압도한다. 발을 옮길 때마다 눈동자만 움직인다. 저 정도면 사람에게 해코지 할 개는 아니라는 판단을 한다. 그래도 그 앞에서 위축된다. 간신히 그 시간이 지났다. 한참 지나 뒤를 돌아보니 앉은 채로 여전히 처음 그쪽을 내려다보고 있다. 내가 지나간 것은 아랑곳없다. 나는 돌아보는데, 그 늙은 개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내일 아침은 그 길을 피해 돌아다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산행 내내 개도 늙으면 영물이 된다던 어른들의 말을 떠올린다.

영물이 되면 눈동자 하나만으로도 세상 이치를 다 알게 되나 보다. 가만있는 자세를 갖추는데 세상의 나이가 필요한 게다. 내 아무리 내 안의 갈망에다 시비를 걸고, 내기까지 걸어도 되지 않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다스림이란 가만있는 자세를 배우게 하는 동력이다. 가만있으면 다스리게 된다. 분출할 수 있는 에너지를 나누어 소통하게 한다. 그가 몸을 그대로 둔 채, 앉아 있는 미동만으로 나를 제압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내가 그를 해코지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그럼, 내가 뭐라 내쳤으면 그는 물러섰을까. 벼락같이 대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나도 몸을 움츠리는 게 아닐까. 주눅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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