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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얼음과 흰눈의 중층에 대하여

by 나무에게 2013. 12. 23.

얼음과 흰눈의 중층에 대하여 / 온형근

1.

춥다.
어둠이 웅크리고 있는 산 아래로
빛과 어둠이 교직하고 있다.
빛과 어둠이
눈과 얼음이 중층으로 배열되어 있다.

흰눈에 머무는 빛은
흙을 에워싸고 있는 얼음을 외면한다.
얼음은 가리워져 있는 층에서 움크려 있다.
가벼워진 얼음 위로 흰눈은 지독히도 포근해 보인다.
빛이 거기에 머물고 있다.

경사진 길 언덕으로 얼음은
지상의 흙살 위에서 한껏 투명해져 있다.
삶이 가리워져 있는 얼음이란 얼마나 숭고한 것인가.

산길은 빛을 소멸시키며
산의 노출을 가늠하게 해준다.

2.

찬바람이
얼굴 표면을 매섭게 내리친다.
정월 대보름의 부럼을 깨물고 나선 새벽 산행은
산책의 묘미를 마음껏 안겨 준다.
귀밝이 술을 마셔야 한다는 말이냐?
부럼을 더 깨물어야 한다는 말이냐?

정월 대보름달이 비쳐주는 눈내린 산길은
환하기가 이를 데 없다.
보폭이 짧아지고 있다. 걸음걸이가 그렇다.
아주 미끄럽다.

바람이 기승을 부린다.
볼과 귀를 사정없이 내리친다.
얼었던 귀는 떨어질 듯 찢어질 듯 아프다.
바람 앞에 꽉진 두 손바닥은 여전히 따뜻할 것이다.
그 두 손으로 귀를 만져주고 싶다.
하지만 참는다.
내 몸에서 귀가 떨어져 나갈지언정
오늘은 이 혹독한 차거운 바람을
귀로써 지니고 싶다.
귀여, 정말 미안하다.

어둠을 가린 길을 허용치 않으려는 듯
나는 산이 되어, 산이 되려 납작 엎드리고 만다.
낮아진 내 몸과 산은
어느새 또 하나의 산이 되어 있다.

길은
얼음의 숨김으로 평범하지 않다.
내 발걸음이 내 딛는 곳이 길인지 산인지 알 수 없다.
돌아갈 수도 내려갈 수도
진퇴양난의 길을 더 낮아진 자세로 있다.
숲 속으로 보름달은 모습을 감췄다 보여주었다 한다.

길을 피해 숲가장자리 숲의 흔적으로 나선다.
걸음 하나하나 살얼음 밟듯
내동강이치듯 온 몸의 긴장이 전율한다.
아직 긴장을 긴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몸이 살갑다.
길에 의하여 펼쳐지는 긴장이다.

3.

미끄러짐은 고통과 비참을 표명해주는 도구다.
튕겨짐보다 더 심한 경지에 놓여 있는 것이
미끄러짐이다.
굴절되고 직선으로 내리꽂고 하는 것은
미끄러짐의 속성이다.

중층으로 얼음과 눈이 함께 하고 있어도
눈내린 산길은 포근하다.
얼음 위에 덮인 눈의 층으로
산길 또한 긴장하므로써 기특한 형태를 지닌다.
머리가 쭈뼛하게 따갑다.

도시의 산은 도시의 불빛으로 외롭다.
햇살이 미처 동트기 전에
산은 도시의 불빛으로 조심스럽게 눈뜨고 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가 아니다.
산이 덩그러니 혼자 외롭게 놓여 있다.
외로운 산이다.
그것은 섬이다.
그 섬을 걷는다.
도시는 섬을 지닌다.
그래서 도시는 바다이다.

새벽 산을 내려가야 할지 말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머무를 수도 나설 수도 없다.
수묵화처럼 짙은 소나무 둥치들이 일제히
나를 쏘아보고 있다.
내려갈 것인가 남을 것인가 머무를 것인가의
즉답을 요청하고 있다.
나뭇잎에 묻힌 눈을 떨꾸며 쏟아부으며
대답을 강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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