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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바람처럼 구름처럼

by 나무에게 2013. 12. 23.

바람처럼 구름처럼 / 온형근



한 발을 옮기면서 나는 무엇을 마실 수 있을까. 살면서 괴로움을 알게 되면서 마실 수 있는 것에 한계를 느끼게 된다. 바람처럼 구름처럼 나서고 싶다. 갈 곳을 스스로 정하지 않는다. 다만, 잠자리를 구걸할 몇 곳의 친구들을 떠올리고 있다. 친구를 만나려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떠돌면서 느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자 함이거나 철저하게 자신을 통제하는 힘이 어디에서 비롯될 것인가를 찾고자 함이다. 날 수 있는 기력이 있다면 날고 싶다. 오가며 사람들의 숲에 묻힐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그대로 묻히고 싶다. 아주 단순한 바람이고자 구름이고자 한다.

그곳에는 들판이 보일 것이고 들판의 끝자락에 따뜻한 산이 있을 것이다. 더러 싫증이 나서 고개를 들면 맑은 하늘이 웃고 있거나 국토의 끝자락에 불쑥 근엄한 바다가 하얀 물거품을 일으킬 것이다. 감흥을 내지 않는다. 무감동의 바람처럼 구름처럼 그들을 어루만지리라. 그들이 나를 이끌지는 못한다. 그들이 나를 유혹하지는 못한다. 나는 다만 흐를 뿐이고 무감동의 영혼일 따름이다. 자유로운 영혼은 어떠한 일에도 감동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을 지치게 하는 감동 이후의 일에 영혼이 너절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람이고자 구름이고자 나서고 싶은 것이다.

내게 숱하게 물어볼 것이다. 어디서 왔느냐고, 어디로 갈 것이냐고 말이다. 하지만, 대답을 할 수가 없다. 내가 묻고 내가 들어야 할 혼란이 두렵다. 아니, 어쩌면 그 혼란 속에 이미 잠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허한 옷깃을 파헤치며 바람은 가슴으로 파고들겠고, 지친 영혼의 한 자락으로 구름은 안겨들 것이다. 치유할 수 있는 대상이 없다. 다시 숲이 숲으로 들판이 들판으로 보일 수 있을지를 알지 못한다. 잔잔한 하늘을 바람이 구름을 밀어 그림자를 드리우게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금은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날 수밖에 없는 세월이다. 구르는 돌멩이로 떠나야 할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