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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뚝심과 비전의 농생명 교육

by 나무에게 2013. 12. 24.

대통령은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로 기숙형 공립고 150개, 마이스터고교 50개, 자율형 사립고 100개 등 모두 300개의 고등학교를 만들어 고교 교육에 다양성을 주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기숙형 공립고`는 학생의 80% 가량이 기숙사에 입주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학교다. 농촌, 중소도시, 대도시 낙후지역 등에 짓고, 해당지역 학생이 우선 입학할 수 있게 해 교육 때문에 지역이 낙후되고 가난이 대물림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는 취지다. 마이스터고교`는 전문계 특성화고교로, 학생의 특기와 적성을 살리면서 졸업 후엔 취업과 진학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는 개념이다. 또 `자율형 사립고`는 현 자립형 사립고와 유사하다.

50개의 전문계 특성화고교를 마이스터고교라고 지정한다는 것이다. 현재 전문계 고등학교는 농업, 공업, 상업, 수산업 등의 학교를 말한다. 이 중에서 농업계 전문계 고교는 전국에 72개교가 있다. 공업이나 상업에 비하면 급격히 줄어 든 게 사실이다. 농업계고교는 지방의 중등교육을 이끌어 왔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직업교육의 산실로 기능하였었다. 토지를 배경으로 하는 산업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땅이라는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다. 농생명산업이 상대적인 가치에 밀려 경제적 우위를 점하지 못한다고 학교를 줄였다. 시대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그 남은 72개의 농업계 전문고교도 순수한 농생명 고교로 정체성을 가지는 학교는 20여 개 학교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분야가 서로 섞여 있다.

경기도 교육청은 2월 말, 관리직 인사에서 농생명 고교인 발안농생명과 용인농생명 산업 고등학교의 교장을 공업 교사와 공업 장학사를 거친 교장으로 인사 조치하였다. 대통령이 마이스터고교를 지정하는 시점에서 농생명산업의 현장감과 손맛을 아는 농생명 교사 출신의 교장을 배치한 게 아니라 공업 출신 교장을 배치한 것이다. 지금까지 경기도 교육청의 전문계 고교 교장 인사 원칙은 과학산업교육과에서 해당 전문계고교의 빈 자리를 해당 전공 교장 대상자를 3배수로 추천해서 그 3배수에서 선정하여 인사 조치하였던 것을 이번에 바꾼 것이다. 인사원칙이라는 게 만들어 놓고 지키다가 또 어떤 논리에 의하여 원칙을 바꾸기도 하면서 발전되어 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인사 원칙은 납득할 수 없다. 대통령의 마이스터 고교 육성 취지에도 어긋난다. 농생명관련 전공 교장 임용 대상자들이 없는 것도 아닌데, 공업 출신 임용대상자로 배치하였다는 것은 뭔가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게 분명하다. 국가가 프로 교사를 양성하는 데 들이는 비용을 생각한다면 이는 잘못된 인사 원칙이고 분별 없는 행위임에 틀림 없다. 농생명 산업은 소수자다. 소수자를 보호하고 인정해 주는 사회적 합의에도 어긋난다. 농생명 출신이 공업 전문고교 교장으로 가고, 상업 교사 출신이 공업 전문고교 교장으로 가도 된다는 말이다. 지금 이런 식의 인사 원칙이라면 그렇다는 말이다. 무엇보다도 이제 농생명 관련 각종 연수와 자기 계발로 프로 교사가 되기 위해 정진하는 젊은 교사들에게 과연 어떤 희망의 메시지를 남길 것인가?

관리직이라 전공 교과와 상관 없이 배치할 수 있는 인사의 기본 원칙에 충실하였다는 평가를 내릴 수는 있다. 그러나 과연 세밀한 농생명 산업의 비전을 제시하고 마이스터 교육을 할 수 있는 제반 뒷받침을 뚝심 있게 할 수 있겠는가? 잠시 시간만 때우고 자리를 옮기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키우게 하는 소지를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농생명 교육은 농촌의 문제만큼 어렵고 풀어 내기가 쉽지 않은 분야이다. 뚝심과 비전 없이는 어려운 현안을 이끌어 갈 수 없다. 그렇다고 소수자인 농생명 산업 교육이 필요한 학생들을 내칠 것인가? 분명한 것은 선생님의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선생님과 1시간 정도 이야기도 나누어 보지 못한 이 학생들을 어느 경쟁 체제 교육에 도입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이 학생들을 어떤 방식으로 살려 낼 것인가. 그 대답이 농생명 교육에 있었고, 지금까지 그러했다.

어려운 교육 현장이 농생명 교육 현장이다. 보채고 얼르고 다독거려 주어야 하는 교육이다. 이 현장은 힘의 논리와 경제적 논리로 풀어갈 수 없는 매우 밀도 높은 다양한 현안을 지닌 곳이다. 뚝심과 비전 없이 다양한 욕구와 위, 아래를 측정할 수 없을 정도의 깊이와 폭을 가진 문제를 풀어갈 수 없다. 농생명 산업은 다른 산업 분야와 달리 1차, 2차, 3차, 4차....6차 산업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실제로 학교에서도 이러한 산업 모두를 현장에 적용하여 시도하고 있다. 학교 기업도 그 중 하나인 셈이다. 속성 중의 하나가 어떤 교육 마인드를 적용하여 완성시키는 데 매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농생명 프로 교사를 양성하는 데에도 엄청난 끈기와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인사 발령을 받았으니 2년 정도 잘 몸보신하고 있다가 또 옮기면 될 수장의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긴 잘못 나섰다가는 나서느니보다 못할 수도 있다.

가장 곤혹스러운 사실은 다른 데 있다. 어찌 이렇게 인사 원칙이 바뀌면서 조치되고 있는데, 농생명 교사들의 권익을 대표한다는 사단법인 한국농업교육협회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라는 것이다. 왜 입을 다물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이미 관리자로 교육 현장에서 활동하는 농생명 출신 선배 교사들은 왜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농생명 평교사 협의회]라도 발족하여야 할 참이다. 목소리가 없으면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소수자인 농생명 교육을 휘둘러 놓아도 아무 목소리가 나지 않으니, 앞으로 이보다 더한 또 다른 휘둘림이 나서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겠는가 말이다. 섬세하면서 세밀한 농생명 관련 교육과 학생들의 따뜻한 인성을 보장할 수 있는 농생명 교육이 기로에 섰다. 이래가지고 농생명 관련 젊은 교사들이 마이스터 교육을 할 수 있게끔 자기 자신을 새롭게 다질 수 있겠는가 말이다. 누가 책임 있는 위치에서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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