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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마이스터 명품' 데몬스트레이션 야간 굴취

by 나무에게 2013. 12. 24.

해가 길어진 게 틀림 없다. 몇 번이나 그렇게 되뇌이며 출근한다. 백련 종자는 잎이 길게 나왔다. 햇빛을 향해 고개를 삐끔 내밀고 있다. '알립니다.'를 만들었다. 조경학 시간 실습과제 평가를 한다고 했다. 복장을 강조하였고, 신발과 장갑과 모자까지 나열했다. 이르게 28명의 실습을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분재포와 조경포에 알려 삽과 새끼줄과 코이어 로프와 녹화 마대, 그리고 고무바까지 준비하라고 일렀다. 삽은 충분할 것이지만 새끼줄이나 코이어 로프가 부족할 게 뻔하다. 작년에 구입하고 많이 분을 떠서 사용했지만 아직 새해 들어 구입 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점심 이후에 옷을 갈아 입고 장화를 신은 채 모자를 갖추고 조경포로 나왔다. 레이크를 들고 우선 몸을 푼다. 연못 가장자리 흙을 해안가 처럼 자연스러운 곡선이 나오게끔 손질한다. 자갈과 돌이 많이 나오고, 장비로 땅을 파낼 때 들어 나온 잔디가 곳곳에서 뒤집혀 배를 내민다. 레이크로 찍어 심을 곳 근처에 우선 둔다. 계속 레이크로 정지를 하고 있는데 모자 속에서 땀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이 모자는 창이 굽어져 그 힘이 모자의 틀을 끌어 당기는가 보다. 창을 편평하게 누른다. 꽃창포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레이크 날 사이로 휘었다가 바로 선다. 땅을 정지하는 가장 큰 이유도 흙에 묻힌 수생식물을 끄집어 제 기분대로 살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스트로브잣나무 쪽으로 간다. 36주를 사다 심은 것이지만 땅을 파면서 심은 지면선(G.L)이 높아졌다. 매우 위험한 상태임을 직관적으로 느꼈다. 연못의 콘크리트도 세월 앞에 새기 시작한 상태이다. 심겨진 나무의 배수 불량은 뿌리가 썩어 들어가면서 잔뿌리털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진단이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배수로로 깊이 파고 물이 빠지게 한다. 여러 명이 함께 하나의 구덩이를 파면 바닥 레벨이 제대로 맞지 않는다. 특히 중간에 힘이 좀 되는 친구가 있으면 안된다. 중간쯤에는 힘이 약하고 적극적이지 않은 친구가 투입되는 게 더 좋다. 그래야 중간의 레벨이 높아 물이 바깥으로 빠지기 쉬워진다. 중간이 깊으면 비오는 날 다시 장화를 신고 그곳을 다듬어 주어야 한다. 이 일은 한 번에 할 일을 여러 번 나누어 또 하게 하는 중첩된 노동을 안겨준다.

3시30분이 되니 사람들이 모인다. '마이스터 명품' 데몬스트레이션 교육이 시작되었다. 시범 보이기 전부터 이론을 이야기한다. 나무를 캐는 것은 굴취다. 조경수 굴취와 식재 중 오늘 실습은 굴취인데, 굴취는 맨뿌리 굴취와 분 굴취, 그리고 동토법, 추적 굴취법이 있다. 묘목 같은 작은 나무나 삽목이 잘되는 나무는 맨뿌리 굴취로 식재하여도 괜찮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분을 둥글게 만들어 굴취한다. 대개 근원지름의 4배 정도 크기의 볼을 만들면 된다. 동토법은 겨울에 하는 특수굴취법으로 모래 등 분이 만들어 지지 않는 곳의 나무를 미리 동그랗게 파놓았다가 물을 뿌리 얼린 후 옮기는 방법이다. 추적굴취법은 칡 같은 나무의 뿌리를 캐 내는 방법이다. 어느 정도 인원이 찰 때쯤 굴취할 나무가 심겨진 밭으로 이동한다.

오늘 캐는 나무는 벚나무이다. 나무높이 2.5미터, 흉고지름 5센티를 기준으로 나무를 선정하여 굴취한다. 그 앞에는 나무를 캘 수 있는 다양한 준비물들이 미리 나열 되어 있다. 나무를 캐는 순서에 입각하여 시범을 보이기 전에 겉흙을 제거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겉흙을 어디까지 긁어 주어야 하는가가 관점이다. 호흡근이라고 말했다. 나무의 지상부분에 자라는 곁뿌리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가로수 등에 그레이팅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답압에 견딜 수 있으라고 좋은 도시, 잘사는 나라 등에서는 비싼 좋은 재질의 그레이팅을 사용하고, 경제가 어려운 곳은 플라스틱을 쓰기도 하는 그레이팅, 그 이유가 바로 호흡근의 보호라고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한다. 그리고 나서 새끼를 감는 방법을 보여 준다. 캐고자 하는 분의 크기를 계산하여 손바닥과 팔꿈치에 6~7바퀴 돌려 묶는다. 사용할 때 끝자루를 당기면 저절로 풀리게 하는 것이다.

나무 분의 크기를 결정하여 원을 그리고 삽을 뒤로 돌린 후, 수직으로 파들어간다. 물론 주변에 공간이 충분하면 좋겠지만, 이 나무의 경우는 주변 나무들과의 공간이 좁고 나무가 그리 크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적당히 찔러 주고 쐐기처럼 흙을 파내라고 했다. 굵은 뿌리가 3개 정도는 있다. 톱을 사용하면서 톱질하는 방법을 말한다. 당길 때 힘을 주는 것이라고,  밀 때는 힘을 빼라고 했다.  그리고 나서 새끼로 허리감기를 하였다. 그런 후 위아래감기를 하고 시범을 마쳤는데, 가만히 보니 새끼가 절대량 부족한 상태이다. 그래서 다시 녹화마대를 감고 새끼로 조이는 방법과 거꾸로 새끼를 감고 녹화마대로 보자기 싸듯 묶는 것까지 시범을 보인다. 나중에 흉고자로 흉고지름 재면서 크기를 이름 옆에 썼다. 제일 큰 나무를 캔 사람이 5센티였다. 작은 사람은 2센티가 못되는 나무도 굴취하였다.

1인 2주씩 모두 캐는 데 3시30분에 시작하여 5시 40분에 마쳤다. 마치면서 삽과 장갑 등 내 온 물품들을 제자리로 옮겼다. 그리하여 옷을 털고 나서려는데, 우습게도 정서 흐린 업자에게 전화 온다. 내일 아침 10시까지 정확하게 나무를 보내겠다고 한다. 흔들림 없이 그러라고 했다. 아주 바람직한 하루를 보낸 셈이다. 퇴근을 서두르면서 제자에게 전화한다. 나무를 보내 주지 않아도 되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무 때고 필요하면 다시 전화하시라고 한다. 하긴, 내일 아침 10시에 나무가 들어와야 들어온 것이지, 그 엄청난 사기성의 뚝심에 내 할 말이 없다. 내 할 일을 다한 셈이다. 그래서인지 야간 굴취의 행복감에 젖는다. 나와 함께 야간 굴취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옷을 털면서 흐믓한 표정이다. 실습도 제대로 준비하고, 제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마이스터 명품 데몬스트레이션을 할 수 있다면 모두가 즐거운 하루, 모두가 행복한 미소, 모두가 기분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행복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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