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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매화나무를 분뜨다

by 나무에게 2013. 12. 24.

전화를 받는다. 매화나무를 캐야 한다는 것이다. 그 매화나무는 내게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다. 담당자가 따로 있다. 여기서 담당자라는 것은 그 물건의 생사여탈권을 지닌 사람을 말한다. 필요하면 캐는 인력을 동반하여 캐가라 한다. 그래도 나무를 사겠다면 팔고, 캐 달라고 하면 팔지 않아 왔다. 나도 내용을 안다. 올바른 방법이다. 이번에는 그게 아니다. 직위를 이용한 거래다. 캐서 직접 배달까지 해 주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니 담당자는 여전히 같은 소리를 하고 있을 것이고, 그 일을 해 내야 하는 경영자는 답답했을 것이다. 생각 끝에 내게 전화를 했다. 아직 장인상에 근무도 못하고 있는 내게 오죽하면 전화했을까 싶다. 생각에 골몰하면 상황을 잊는게 분명하다.

얼른 생각을 단순화시켰다. 피해서 될 일이라면, 누군가 나 말고도 해 낼 수 있다면 돌아갔을 것이다. 출근하면 오전에 옷 갈아 입고 서너 시간 작업 해 분을 떠 주겠다고 했다. 배달은? 그것은 경영자가 알아서 한다고 한다. 아무 소리 않고 서너 시간 흙에 나를 맡기면 된다. 기력이 달려 힘들겠지만 해 낼 수는 있다. 삽을 날카롭게 갈아야겠다. 그리고 분을 만들 수 있는 녹화마대와 고무바를 찾아야 한다. 제법 큰 매화나무다. 한창 꽃이 피었을 텐데, 이를 캐는 것이 아깝다. 그 친구 제법 깐깐해졌나 싶더니, 관료의 속물이 되고 말았나 보다. 자딸게 별 것을 다 챙기더라는 전언에는 씩 웃고 말았는데, 여기까지 침투되어 매화나무 좋은 것은 어찌 알았으며, 한 그루 캐서 보내달라는 말은 어찌 할 줄 알게 되었는가 말이다.

또 하나의 강을 건너고 있다. 그 친구는 나도 꽤 잘 아는 사람이다. 정의롭다고 생각했다. 매우 강건하고 굳센 친구였다. 어쩌면 생리적으로 약자를 파악하는 능력이 커졌을지도 모른다. 하긴 다 그렇게 살더라. 그게 논리이고, 업무 환경이다. 배려라는 것을 실천하기에는 부적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아직 그때의 젊은 기백은 있지 않을까? 속물 근성으로 만나는 사람들끼리 속물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속물 근성으로 거래하는 중간에 낀 나도 속물이 되고 마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나야 나무 캐는 노동을 신성하게 여기면 된다. 이 또한 마이스터 명품 교사의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사진을 찍으라고 후배들을 배석할까 말까를 생각 중이다. 기분 내키는 그 상황에서 판단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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