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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어치와 다람쥐

by 나무에게 2013. 12. 24.
어치와 다람쥐 / 온형근

얘네들은 다르면서 비슷하다. 날고 기는 것이 다르고, 도토리를 즐겨 먹는 것이 같다. 생존 방식에서의 유사성 말고도 자연에게 귀속되는 여분의 도토리를 생산하는 방식에서의 비슷함에 주목하게 된다. 욕심이란 생물학적 생존의 기본 욕구에 바탕을 둔다. 그중에서 몸을 이루며 활동과 에너지가 되는 기초 대사, 즉 먹는 것에 대한 것은 더욱 그렇다. 어치와 다람쥐는 욕심 부리고는 그 욕심의 반도 건지지 못한다. 생존의 기본 욕구보다 훨씬 많은 도토리를 확보하고는 나머지는 자연으로 돌린다.

어치는 부리로 땅을 파서 도토리를 한 알씩 넣고 낙엽과 이끼로 덮는다. 다람쥐는 찾기 쉬운 개활지인 언덕이나 소나무 아래를 찾아 도토리를 묻는다. 소나무는 타감작용이라고 하여 소나무 잎의 분해 과정에서 화학물질이 외부로 배출되어 다른 식물이 그 근처에 살 수 없게 하는 기능을 한다. 이른바 상호유해작용을 포함하는 것이다. 타감작용Allelopathic의 물질 배출에는 1. 휘발에 의한 배출, 2. 뿌리로부터의 배출, 3. 빗물에 의한 용탈, 4. 낙엽이나 잔여물의 분해 따위의 타감작용 물질 배출이 있다. 아무튼 타감작용은 식물체 혹은 그 일부분에서 합성된 화학물질들이 외부로 배출되는 과정에서 다른 식물에게 영향을 주는 작용을 말한다. 생화학적인 상호유해작용과 상호유익작용을 포함한다.

그러니 다람쥐가 도토리를 소나무 아래에 묻기에 매우 좋아 보인다. 그러나 어치나 다람쥐가 땅을 파서 도토리를 묻고 나면 소리없이 눈이 쌓이게 된다. 다람쥐는 겨울잠을 자러가고 어치는 아직 남아 있는 도토리를 찾아 졸참나무 껍질 틈새에 도토리를 숨겨 놓는 일을 계속한다. 눈 덮인 땅에 도토리를 묻을 수 없는 것도 그 이유이지만, 나무 껍질 틈새에 숨겨 놓은 도토리는 또한 청설모의 긴요한 몫이 된다. 자연의 끊임 없는 순환에 놀라울 뿐이다. 어치와 다람쥐의 생존전략에서 배려를 발견한다. 묻어 두고 숨겨 놓은 도토리가 모두 제 몫인 줄 알았지만 속아서 자연에 배려가 되는 유전 인자를 지닌 셈이다.

어치와 다람쥐는 그 도토리를 모두 차지하게끔 설계되어 있지 않다. 금방 잊어버린다. 거기에는 겨울에 소복이 쌓이는 눈이 큰 역할을 한다. 지닌 것을 잊어버리고 남을 돕는 것, 이것이 사람의 삶과도 매우 닮아 있다. 많은 이들이 사실 남을 돕고 있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서로 돕고 있는 게 분명하다. 다신 어떠한 경우에 들지 않겠다고, 이제는 내 몫을 빼앗기지 않겠다고 해 놓고는 다시 그런 상황에 들면 금새 언제 그랬냐는 듯 바쁘게 맑아지는 속성을 가졌다. 누구나 비숫하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속이고 속고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평소에는 관심 없다가도 도토리 하나 보이면 얼른 챙겨서 묻어 두고 숨겨 두어야 하는 생존 방식에서 자연을 배운다. 그러고도 다 챙기지 못한다. 챙기지 못해 버림받은 도토리는 숲이 된다. 이른 봄에 싹이 트고 굴참나무, 상수리나무가 되고 떡갈나무, 신갈나무가 되며, 갈참나무, 졸참나무가 되어 숲을 이룬다. 소나무는 이들에게 쫓겨갈 수밖에 없다. 소나무가 산꼭대기로 이사가고, 참나무류가 산의 주인을 하게되는 이유도 어치와 다람쥐의 부지런함을 둘 수 있다. 소나무가 타감작용으로 그렇게 다른 식물을 자기 주변에 살 수 없게 하는 데도 불구하고 어치와 다람쥐와 소복한 겨울 눈 앞에 속수무책이다. 어치도 다람쥐도 숲에 깃든다.

[좋은 문화 좋은 나라], 창간호, 원고 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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