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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의림지 소나무숲 걷기

by 나무에게 2013. 12. 24.

 

 

의림지 소나무숲 걷기 / 온형근

 

역시 그 길은 남아 있었다. 논으로 이루어진 겨울 들판 한 가운데 농로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었다. 혼자 또는 삼삼오오 짝을 지은 채 눈을 뽀득이며 등산복 차림으로 걷고 있다. 세월은 고향 떠난 객지의 사람에게 항상 옛 모습의 풍경만 떠올리게 하였는데, 이제는 가장 최근의 풍경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눈내린 의림지 소풍길이 그렇게 궁금하였더니, 그 길을 걷는 사람들. 지금의 모습이 스며들게 되어 무척 흥분된다. 그렇다면 옛 그 길을 걷던 꼬마들의 무리는 지워질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시대라는 잣대와 추억이라는 어떤 구분에 의하여 다르게 떠오를 것이다. 물론 오버랩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 길이 끝나는 지점에 집이 한 채 있다. 그 집에는 한 아이가 살았었다. 그 아이의 얼굴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그 근처에서 그 아이를 본 적이 있다. 그 집은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다. 농로길이 끝나는 지점이다. 그리고 그 위 의림지 둑에 오르면 수문이 놓여 있는 자리가 있다. 그 자리를 정자로 위장했다. 전에는 덩그라니 수문만 흉물스러웠는데, 제대로 꾸몄다. 1972년의 의림지 제방이 터지는 수해는 수문관리의 인재라는 말이 지금까지 유력하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일기쓰기에 몰두했던 그 때의 일기에는 떠내려 가는 것들과 남은 것들에 대한 분주함과 경이로움과 두려움 같은 것이었다.

농로길이 끝나는 곳에서 의림지 입구를 바라보면 근사한 소나무숲이 전개된다. 영호정이 그곳에 있다. 나는 천천히 걸으면서 사진을 찍고 다가갔다. 내 기억에 영호정의 현판은 저수지쪽이 아니었을까 싶었는데, 현판은 입구쪽으로 틀어져 있었다.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으나, 숙제로 남겼다. 그리고 다시 거꾸로 의림지 제방을 다시한번 돌면서 더 많아진 정자를 보았다. 경호루와 영호정 두 누정에 의지했던 기억이 갑자기 엉키게 된다. 경호루는 저수지쪽으로 현판이 달려 있다. 경호루를 지나면 폭포 다리가 있고 그 길을 넘어가 산을 넘으면 신백리가 나오게끔 되어 있다. 이제는 새로운 길이 하도 많이 생겨 옛 길의 동선을 누가 이용이라도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럴 것이다. 차량으로 이동하는 시대에 걸음으로 오가던 시절을 복사해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단단히 얼은 못을 깨고 저수지 곳곳에 공어 낚시를 하고 있다. 누군가 이제 의림지도 빙어를 잡아다 넣었다고 한다. 물론 공어도 있다고 하고, 공어와 빙어의 차이점을 물으면 보통 공어는 옆에서 보아도 속이 보이고 빙어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아마 공어가 빙어보다 속이 훨씬 많이 잘 보이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오히려 다른 지역 사람들은 빙어와 공어는 같은 것이라고 우긴다. 생물학자들이 오래전에 이미 연구논문을 통하여 공어와 빙어는 품종이 다르다고 발표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야기는 주변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일 뿐이다. 아무튼 의림지에는 空魚가 있고 氷魚가 있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의림지에 다다르는 옛 농로길 걷기, 그리고 거기서 다시 의림지 소나무숲을 따라 천천히 그리고 소나무의 기운이 넉넉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그곳을 따라 도는 걷기는 꿈같은 일이다. 실제로 꿈에 나타나곤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체를 보고, 걷는 사람을 볼 수 있었고 추체험으로 의림지 소나무숲을 걸으니 푸근해진다. 수원 서호를 돌면서 걷는 일이 떠올랐다. 물론 서호는 한 바퀴 통째로 걸을 수 있지만, 의림지는 한쪽이 차량이 다니기 때문에 작아 보인다. 길을 우회할 수 있도록 바꾸고, 의림지를 통째로 돌게 하는 게 바람직할 것 같다. 그러나 차량으로 슬쩍 의림지를 스치면서 전체의 풍광을 보게하는 것이 관광 차원에서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화성이든, 어느 공원이든 대부분 차를 주차하고 그곳을 회유하면서 볼 수 있도록 해 두었다. 의림지는 어쩌면 차로 슬쩍 스치게 하는 일을 방조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떤게 훨씬 의림지를 대우해 주는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길이 많아져 충분히 우회도로를 만들 수 있다. 지금의 의림지는 순수하게 의림지의 영역만으로 북적인다. 의림지의 규모는 그대로 두고, 배후지역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 의림지 영역 안에 복합놀이시설이나 집단시설지구를 배치하는 현재의 오밀조밀한 개념은 버려야 한다. 배후 시설이 자리할 곳을 더 넓게 더 멀리 잡아야 한다. 그리하여 지금의 의림지 영역은 그대로 보존되어야 한다. 그게 소나무숲을 대하는 바른 시선이다. 걷고 사색하면서 문화유산으로 유지되게끔 배후 영역을 넓게 잡아 주는 관점을 지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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