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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영화 ::타짜::의 왜색과 신파

by 나무에게 2013. 12. 23.

영화 ::타짜::의 왜색과 신파

2006-10-07

평경장을 만난 고니는 평경장의 한문 명패가 달려 있는 집에서 계절을 넘긴다. 이른바 타짜 수업 중이다. 왜 돈을 벌지 못하였느냐고 물으니 돈을 벌려고 하지 않았다는 말을 한다. 땅을 사면 내 땅만 땅값이 떨어진다고 한다. 평경장은 타짜이면서 그 나름의 삶의 철학을 지녔다. 화투와 자신을 하나로 물아일체의 경지를 설파하기도 한다. 고니는 평경장의 집에서 평경장의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가져온다. 평경장은 고니로 인하여 자신의 비밀스런 정원에 틈입자가 생겼음을 알지만, 인내한다. 삶이라고 치부한 것이다. 고니로 인하여 자신의 품위가 낮아지고 있다고 중얼거리기도 한다. 고니는 고니대로 깨달음이 있으면 평경장의 집에서 춤을 추면서 호들갑을 떤다. 이때 평경장의 집 정원이 화면에 보인다. 짧은 시간이지만 평경장은 정원에 물을 주고 있었다.



가만히 보면 평경장의 집 정원은 왜색이 짙다. 우리 나라의 왜색 정원은 사실 구분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면 쉽게 수긍할 수 있다. 우리 전통 민가의 정원에는 나무를 심거나 정원을 꾸미지 않았다. 보통 뒷마당이나 후원이라고 해서 여자들의 생활공간이 오히려 정원이기도 했다. 여기는 보통 풍수지리에 의해 앞에는 내가 흐르고 뒤에는 산이 있는 배산임수의 양택법에 의해 집 뒷쪽이 언덕이나 야트막한 산이 있기 마련이고, 이곳에 장독대가 있고, 여자들이 번다하게 드나드는 생활 공간으로서 기능을 하게 되어 있다. 유교적인 도덕률로 가득찬 조선시대를 거쳐 그렇게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물론 고려나 신라 그 이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가까운 조선을 거쳐 일제, 그리고 해방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변모를 살펴보는 것이다.

어려서 초등학교에 다닐 때도 학교 정원에는 향나무를 단아하게 전정한 왜색 정원이 주류였다. 주택의 정원이라는 것은 늘 마당처럼 비어 있어서 곡식을 말리고 수확하거나 잔치를 하거나 수시로 접었다 펼칠 수 있었던 밥상처럼 이용된 것이 고작이다. 기껏해야 모란 정도를 표시 안나게 심었을 정도이고, 수석을 한쪽 켠에 심어 놓은 게 다다.  그러던 것이 일제를 거치면서 정원이 왜색으로 변하게 된다. 일본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들이 늘어나고, 그 지식인들이 곳곳에서 행세를 할 수밖에 없게된 시절의 풍경이다. 너나 없이 일본의 정원문화가 스며드는 것이다. 문화라는 것은 서로 흘러 들어가고 받아 먹고 하는 것이다. 그런 왜색풍 짙은 정원이 우리나라 관공서를 비롯하여 각 지역의 유지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집에서 판을 치게 된 것이다.

물이 흐르듯 주고 받는 행위를 거스르거나 막을 수 있는 주체는 없다. 일본의 정원문화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 일본 서기에 있는 백제사람 노자공이라는 사람이 일본 궁궐 남정에 정원을 만들었다는 기록이다. 그러나 일본과 우리나라는 서서히 독자적인 정원 특징을 지니면서 특성을 지니게 된다. 일본이 아기자기한 축소지향적인 정원을 만들면서 관상과 관념을 지닌, 그러면서 대단히 추상적인 정원으로 변모하는 동안 우리는 인간적 척도를 지닌, 사계절의 느낌을 가진, 그러면서도 매우 소박하게 자리를 잡아갔던 것이다. 그러니 ::타짜::의 평경장의 집도 일본식 교육에서 행세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원문화를 가꾸어 왔던 어느 집의 현재인 것이다. 한옥이 요정이 되면서 왜색풍 정원이 만들어지고, 적산가옥이 왜색풍 정원으로 주택정원의 고급화라고 자처하게 된 것과 유사하다.

거기다가 일본에서 공부한 스님들까지도 이에 가세한다. 다정은 일본 정원에서 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정원 양식이다. 일제 시대에 일본에서 공부한 스님들이 더러 있었나 보다. 유학스님인 셈이다. 과거에 혜초 스님도 아랍까지 다녀오지 않았던가. :왕오천축국전:을 남겼던 혜초는 천축인 인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대식(大食)이라 불리던 아랍을 역방한 것이다. 그런데 일제 시대에 일본에서 공부한 스님들이 돌아와 자기가 머무는 사찰에 왜색풍이 짙은 정원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찰이 꽤 있다. 그 중 하나가 해남의 끝자락에 있는 두륜산 대흥사의 선원인 것이다. 이러한 왜색풍의 정원이 아직 남아 있는 곳은 중소도시의 행세께나 했던 아직 개발되지 않는 곳의 주택들이다. 그런데 왜색풍이라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대중은 아직도 왜색풍의 정원이 주는 비밀의 정원 같은 이야기에 끌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꾸기에 무척 귀찮고 분재나 화분 등 매우 부지런해야 가꿀 수 있는 정원, 그러면서 화단인 이런 정원이 영화 ::타짜::의 평경장 집의 정원이다.

아직 대중은 왜색풍의 향수를 지니고 있다. 아님 유전인자가 남이 있는지도 모른다. 초등학교는 아직도 왜색풍의 향나무 위주의 정원을 지니고 있다. 물론 관공서 역시 여전하다. 쉽게 들어와서는 이 땅의 풍토와 분위기에 맞물려 상생하고 있는 셈이다. 문화라는 게 어쩌면 서로 동화되고 튕겨 내면서 상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박이라 일컫는 영화들을 보면 분명히 왜색풍의 무언가를 영상에 제공하고 있다. 그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감성이라는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만드는 사람, 참여하는 사람, 배우, 그리고 영화에 관련된 많은 사람들의 감성과 경관을 보는 관점, 즉 영상미 자체에 왜색풍의 뭔가가 도사리고 있는 게 아닐까. 알든 모르든 이 왜색풍의 분위기가 영화를 최고의 흥행거리로 만드는 힘은 아닐까. 뒷골목의 향수 역시 다분히 왜색풍이다. 아니다. 오히려 왜색풍을 지닌 신파적이다.

영화 ::타짜::에서도 신파적 대사와 풍경과 관점이 많이 돋보이고 있다. 고니에게 평경장 말고 정마담과 '남원'이 고향이라는 고광렬이 유일하게 주변 인물로 나오는데 이 고광렬과 고니와의 관계가 아주 신파적이다. 그렇다. 고광렬이 팔을 잘리고 고니가 고광렬을 구하는데, 정마담이 평경장을 사주하여 죽게 한 것을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다는 말을 떠올리며 병원으로 옮기는데 여기서의 대사가 죽여주는 신파적이다. 수술실로 실려가는 고광렬이 고니에게 말한다. 내가 뭐가 좋아서 함께 다녔느냐는 물음이다. 이에 고니는 말한다. 고향이 같은 '남원'이니까라고 한다. 그러니까 고광렬은 그 위급한 상황에서 예의 시니컬한 미소 끝자락에 '구라'임을 밝힌다. 나는 고향이 '부산'이라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고니는 만면에 '신파적 의리' 가득한 행복한 웃음을 보인다. 신파다. 대중에게는 신파적 요소가 적당히 있을 때 쾌감을 안겨 준다. 이게 지나치면 오히려 짜증이 나는 것이다. 영화 ::타짜::에서는 적절한 신파적 공간과 행위와 분위기가 있다. 이것들이 자아내는 묘한 매력이 영화를 살찌우게 하는 것이 분명하다.



한국에서 성공하는 영화, 영상미는 그렇다. 적절한 '왜색풍'과 '신파풍'이 섞여야 한다. 대중의 갇혀 있는 모공을 열게 하는 힘이 있다. 졸지 않고 영화를 끝까지 따라가게 하는 재미가 있다. 지나친 표현이 곳곳에서 혈을 자극하지만, 따라 갈 수 있는 것은 이 두가지 요소에 의한다. 왜색풍이라는 말을 확장하여 개념을 정의하면 그 정도와 깊이, 가짓수가 엄청나게 된다. 신파풍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지나친 폭력성도 왜색풍으로 분류할 수 있겠고, 코믹한 많은 요소들에서 자아내는 밑도 끝도 없는 웃음, 그리하여 맥풀리는 웃음은 신파풍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나열하지 않더라도 가만히 따져 보면 많은 요소들이 산재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영화 ::타짜::에서 왜색풍과 신파풍이 대들보가 되어 영화를 떠받쳤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영화에서의 산재한 이미지와 대사들이 '구라'라는 말로 되돌려진다. 아무도 믿지 않으라는 말과 맥을 같이하는 단어이다. 어쩌면 세상은 '구라'라는 신을 만들어 이를 떠받치지 않고는 정성이 부족하여 제대로 살 것 같지 않아서 '구라'를 피우고, '구라'를 가리고, '구라'를 떠받치는 게 분명하다. '구라'를 즐기는 사람들은 타짜 중의 하나인 '아규'처럼 손기술을 발견하여 치도곤하듯 '구라'를 피우는 사람을 잡아 내는 데 더 열중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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