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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창작|생산

정조, 머뭇대다

by 나무에게 2013. 12. 27.

정조, 머뭇대다 / 온형근




얼마나 많은 세월을 머뭇대었나요.
알고 있어서 행하려 했으나
행하려 하니 성급하지 않을까 주저
그러다 지나는 것들은 떠나고
떠나보낸 것들은 다시 찾아 들고
기다리고 기다리며 다시 머뭇대었지요.

담장을 기웃대며 나를 해하려 했고
조석으로 끼니마다 은수저에 의지하고
조선의 험한 시대가 통째로 온몸에 저장되어
어제의 은인을 오늘 내쳐야 했고
바꾸고 또 바꾸어야 오늘을 살아낼 수 있었어요.


한양을 등에 지고 화산의 아버지를 찾았고
수원 화성에 새로운 세계를 꿈꾸었지요.
머뭇대던 세월
성급하지 않을까 하던 주저
담장 너머의 두려움
은수저 들기의 무게감
팔만사천 개의 세포에서 뿜어내는 독기를 모두


이곳 화성의 바람으로 씻어내려 했지요.
어질다는 것을 인(仁)이라고 했지요.
측은지심이라고도 했지요.
번암 체제공과 다산 정약용이었지요.
십 년 계획이 이 년 칠 개월로 마쳐졌지요.
알고 행하니 이젠 머뭇댈 일이 없었지요.


정조, 머뭇대다 한달음에 내친 이곳 화성에서
그의 탄생 260주년을 맞이한 시공을 넘어서서
인문의 덕이 미치지 않는 세계가 없고
문화의 어진 바람이 성글며 따사롭게 곳곳을 찾아
이제 수원화성국제연극제로 꽃 피어
해마다 정조를 그리워하는 정서는 열매가 되어
알알이 수원, 그리고 화성을 빼어나게 수놓고
서문에서 북문 사이 백성의 집을 피해 축성한
사람이 만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선처럼
뼛속까지 백성의 뜻으로 머뭇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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