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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치악산 구룡사에는 아직도 있을까?

by 나무에게 2013. 12. 24.

치악산 구룡사에는 아직도 있을까? / 온형근

 


치악산 구룡사에서 귀한 찰피나무를 만난 적이 있다. 아직도 치악산 구룡사에는 그 찰피나무가 있을까? 2003년 대웅전 화재 이후 아직 가보지 않았으니 찰피나무가 그 모습 그대로 있지는 않을 것이다. 막상 찾아가서 그 나무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까봐 더욱 가는 것을 미루고 있는지도 모른다. 핑계처럼 머뭇대는 것이 삶인 것처럼 여전히 가보고 싶으면서 애태우며 번뇌를 키우고 있는지 모른다. 대웅전을 들렸다 왼쪽 뒤편으로 오르다 보면 한적한 공간에 그 단아한 모습을 나타내 주던 나무였었는데, 그곳을 가보고 싶다. 그러다가 에둘러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이 있던 서둔캠퍼스에서 찰피나무 가로 군락을 만났다. 찰피나무가 길옆으로 잘 자라고 있다. 예전 농화학과 건물 마당 가장자리이면서 뒤편 임학과와 오른쪽 원예학과 사이로 난 길을 가면서 오래도록 황홀하게 쳐다보았다.

 

(2005년 7월 29일 12시 29분 수원시 서둔동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서울대학교 농과대학과 수의과대학이 관악캠퍼스로 이전하고 텅 비어 있을 때 찾았었다. 마치 해방 후 군정시대의 풍경과 같아진 캠퍼스 주변을 한참 걷다가 만난 풍경이다. 피나무류는 많다. 찰피나무는 단연 벌이 대단히 좋아하는 꽃을 단다. 이렇게 벌이 즐겨 찾는 꽃을 밀원식물이라고 한다. 찰피나무는 그 중에서 잎과 함께 은은하게 피면서 달콤한 향기와 맛좋고 풍부한 꿀로서 벌을 유인해 수정을 하여 열매를 매단다. 우리나라 피나무과의 식물은 대부분 키가 큰 교목성 수종이다. 찰피나무는 조금 낮고 비옥한 산록에 자란다. 반면에 같은 피나무류에 염주나무는 습이 유지되는 계곡에 잘 자란다. 이외에도 보리자나무, 뽕잎피나무, 연밥피나무, 피나무, 개염주나무, 구주피나무, 털피나무, 평안피나무, 둥근잎염주나무, 섬피나무, 웅기피나무 등이 있다. 가령 어느 사찰에서 한국 식물원(수목원) 협회 등의 전문가에게 의뢰해 피나무류만 모두 모아 조경을 한다면 매우 의미 있는 일일 수 있다. 물론 문화사적으로 사찰 조경에 많이 식재된 수종들을 모아 불교 식물원을 만든다면 그것은 더 할 나위 없는 불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중에 찰피나무는 피나무류에서 가장 열매가 크고 단단해 염주를 만드는 소재로 많이 이용해 염주나무로 더 알려져 있다. 찰피나무의 학명은 Tilia mandshurica Rupr. & Maxim.이다. 반면에 염주나무의 학명은 Tilia megaphylla Nakai이다. 그러니 염주를 만드는 데 최고인 피나무류는 찰피나무인 것이다. 최근에는 조경수로도 개발되어 사찰뿐만 아니라 도시공원이나 아파트 주변에도 한두 그루 심겨진 것을 간혹 볼 수 있다. 아직은 찰피나무를 조경에 이용하기에는 그 절대량이 부족한 실정이기도 하다. 재배된 찰피나무를 구하는 일이 다른 조경수를 구하는 일보다는 어렵기 때문이다. 잎은 서로 어긋나며 달걀모양의 둥근형으로 끝은 뾰족하며 잎의 아래 부분은 하트형으로 보기에 정답고 근사하여 은근한 매력을 풍긴다.열매는 9~10월에 익으며 열매 아래에 가는 줄이 그어져 있다. 잎, 꽃, 열매 모두 실용적이고 상징적이며 기능성을 지녔다. 

이처럼 사찰 조경에 사용되는 나무의 종류는 이와 같이 본의 아닌 구별이 관여한다. 어쩌면 제한적 사용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다. 예전부터 사찰은 속세와 시공간적 접근성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실용적이거나 상징적이거나 기능적인 어떤 자격을 가진 식물을 선택하여 가꾸었을 것이다. 열매, 꽃, 또는 식물에서 얻어지는 다양한 약리적 효능 등이 그것이다. 식물의 선택에 어떤 자격을 부여한다는 것은 곧 자연과의 의사소통에 지혜로웠다는 것을 알려준다. 오랜 세월을 통해 공인된 인증을 받았기 때문에 사찰 조경에 사용되는 나무는 제한적이지 않은 것은 없다.

찰피나무는 높이 20미터까지 곧게 자라는 정직한 기상을 지녔다. 찰피나무를 오대산에서도 발견하였다. 그때 그 열매들은 꽤 오랫동안 오대산의 기운으로 내 책상 서랍에 있었다. 나는 그것으로 염주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귀한 찰피나무와 만남은 내적으로 기쁨을 안겨주었다. 과거 군대 갔다 제대하면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피나무 바둑판을 하나씩 만들어 나온 적이 있었다. 군대에서도 피나무류를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바둑판을 만들기 위해 베어나갔던 시절이다. 아주 큰 피나무류 일수록 만나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제대 기념으로 찍어 넘겼기 때문이다. 안다는 것은 또한 이러하다. 자격이 있다는 것, 뭔가 깊이 있게 천착한다는 것까지 때로는 큰 해악일 수 있다. 해악일 수 있는 것들은 어떤 분야에 자신 있어 하며 우쭐대는 틈새로 기어드는 모습을 지녔다.

(2009.03.16|용주사 사보[월간'화산'4월호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