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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하나를 마치고 또 하나로 떠나는 삶_버드나무

by 나무에게 2013. 12. 24.

하나를 마치고 또 하나로 떠나는 삶_버드나무 / 온형근


 

무거워진 몸, 습에 찌들어 묵진해진 

육신을 이끌고 청계산에 올랐다. 주로 청계사를 중심으로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올라 이수봉을 향했다. 급경사이면서 바위가 많은 곳이다. 여름철에는 퇴근 후 급하게 도착하여 야간산행을 곁들이기도 했던 곳이다. 손전등 하나면 가능하다. 특히 서울 쪽 야경이 기막힌 날이 있다. 눈맛이 삼삼하게 어른거리는 경관 포인트가 있는 코스다. 오르면서 바위틈을 비집고 힘들고 험하게 자란 소나무 군락을 몇 군데 만난다. 하나같이 경관이 훤하게 보이는 곳이다. 제 앞에 아무것도 두지 않은 채 먼 곳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소나무가 자란 곳이다. 그런 경관 조망점이 3~4군데 있어 즐길 수 있는 곳이 이수봉 산행길이다. 왕복 1시간에서 1시간 30분이면 가능하다. 천천히 산책처럼 걷는 산행이라면 2시간이면 충분하다.


2년여 정든 학생들을 떠내 보내야 

하는 날이 왔다. 갖은 생각으로 만감이 교차한다. 처음 시작과 마침의 사이에 놓여 있던 일상과 과정과 사건과 말미잘처럼 달라붙는 섭섭함과 아쉬움과 기쁘면서 흥이 났던 그런 일들이 산행 내내 떠나지 않는다. 저들을 떠내 보내면 또 나는 새로운 이들과 함께 하겠지만, 그래도 첫 제자라 더욱 기억이 남을 게 분명하다. 그들에게 나는 새로운 공부 방법을 시도했고, 그렇게 따라 준 2년의 세월이 쉽게 헤어짐을 담담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참을 오르니 헬기장 부근에서 호랑버들이 껍질을 마악 벗으려고 있었다. 호랑버들은 햇빛이 잘 들고 습기가 많은 산기슭이나 산 중턱을 중심으로 높이 8m 정도까지 자라는 낙엽의 중교목이다. 암나무, 수나무가 구별된다. 꽃은 3~4월에 황록색으로 개화하여 5월에 성숙하는데 종자는 솜 같은 털이 있어 바람에 쉽게 날려 습기 있는 땅에서 발아하여 뿌리를 내리고 그렇지 않으면 배유가 없어 그해 여름을 넘기지 못하고 생명력을 잃는다.


붉은색으로 빛나는 겨울눈이 

호랑이 눈을 닮은 호랑버들의 겨울눈이 부풀기 시작하면 땅속의 얼음이 녹기 시작하는 것을 알게 된다. 우수, 경칩의 절기와 마찬가지로 호랑버들은 땅속의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줄기로 물을 끌어올려 겨울눈을 키우고 꽃을 피운다. 땅속의 봄이 오는 소리를 가장 먼저 세상에 알려주는 나무라 할 수 있다.  얼었던 땅이 녹는데, 아끼는 제자들은 하나를 마치고 또 하나의 세계로 떠난다. 마치 떠나는 제자들을 위하여 호랑버들이 내 눈에 보였는지 모른다. 예로부터 버드나무는 헤어짐의 상징으로 등장하던 나무다. '버들가지를 꺾는다'는 절류折柳가 그것이다. 절류라는 말은 곧 이별을 상징하는 말이다. 임제林梯의 '패강곡'중의 하나인 "이별하는 사람들 날마다 버들 꺾어/ 천 가지 다 꺾어도 가시는 님 못 잡았네./ 어여쁜 아가씨들 눈물 탓이런가/ 부연 물결 지는 해도 수심에 겨워 있네." 이란 시를 보아도 그렇다. 대동강변의 버드나무를 꺾어 배 타고 떠나는 님에게 쥐여 보내는 이별이다.


버드나무는 꺾꽂이가 잘된다. 

떠나는 님에게 정표로 버들가지를 꺾어 주고, 임은 이를 꽂아 심어 뿌리를 내리면 새 잎이 나고, 사랑과 우정도 시들지 않도록 하자는 의미를 지닌다.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의 심정이다. 결국 나는 내 정든 학생들에게 써 줄 시구를 이렇게 정할 수밖에 없었다. 직접 만년필로 써서 졸업 선물과 함께 포장한다. 만해 한용운의 "심은 버들" 이란 시에서 첫 연을 두 줄로 써서 내 마음을 표현하였다.

심은 버들 / 한용운


뜰 앞에 버들을 심어 

님의 말을 매렸더니
님은 가실 때에

버들을 꺾어 말채찍을 하였습니다.


버들마다 채찍이 되어서

님을 따르는 나의 말도 채칠까 하였더니
남은 가지 천만사千萬絲는 

해마다 해마다 보낸 한恨을 잡아맵니다.


여기서는 문자의 유희까지 보아야 한다. 

천만사는 버들가지의 얽히고 설킨 물리적인 가지로도 이해할 수 있지만, 천 가지 만 가지의 생각(思)과도 같은 말이다. 부질없는 기다림의 천만사千萬思일 수 있다. 나는 학생을 지도하면서 버드나무를 심어 단단하고 출중하게 우뚝 설 수 있도록 하였으나, 이미 배울 시간을 마친 나의 학생들은 버들을 꺾어 새로운 세계로 말채찍을 하면서 흔쾌히 삶을 찾아 나선다. 버드나무는 봄의 서정이다. 그러면서 이별과 다시 만날 재회를 꿈꾸게 하는 상징이다. 졸업의 꽃다발에 화려한 외래꽃보다는 이런 버드나무가 섞여 있는 어떤 상징이 있으면 좋겠다. 그들에게 버들가지를 꺾어 주진 못한 채 만해 한용운의 "심은 버들" 첫 연의 싯구로 대신하였지만, 며칠 후, 말 매려 가끔 들리겠다는 제자들의 연락을 받고는 속으로 흐뭇해했다. 흐믓해 할 일이기에.


버드나무류는 종류가 많다. 

아까 말한 호랑버들과 달리 물을 좋아해 물가에서 자라는 버드나무Salix koreensis는 추위에도 강하고 가을에도 푸른 잎이 늦게 떨어지는 20m까지 자라는 교목이다. 이 버드나무 잎을 씹으면 쓴맛이 나는데, 히포크라테스는 임산부가 통증을 느끼면 버드나무 잎을 씹으라는 처방을 내렸다고 한다. 이런 착안에서 만들어 낸 약이 해열진통제로 사용되는 아스피린이다. 버드나무 종류의 뿌리에서 얻은 성분으로 만든다고 한다. 또한 버드나무는 가지가 축 늘어지는 능수버들과 달리 짧은 가지만 약간 밑으로 처진다. 잡아당기면 가지가 잘 부러진다. 이 버드나무의 가지를 한자로 양지楊枝라고 부른다. 예전에는 잘 부러지는 이 버들가지로 이 사이에 낀 이물질을 청소하였는데, 이를 양지질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후에 이것이 '양치질'로 되었다. 이렇게 이를 청소하던 버들가지인 양지楊枝가 일본으로 건너가 '요지'로 불렸고, 일제제국주의를 거치면서 지금도 이쑤시개를 '요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2009.02.14 월간 용주사보 [화산] 3월호 원고 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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