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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함께

해미읍성의 비어있음과 어지러움

by 나무에게 2013. 12. 23.

해미읍성의 비어있음과 어지러움 / 온형근


언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출처가 정확하지 않은 구전의 말이다. 고인이 되신 <뿌리깊은나무>의 발행인 한창기님께서 생전에 "나는 해미읍장이 꿈이다" 라는 말씀을 하셨다는 것이다. 내게 해미읍성이라는 곳은 막연한 곳이었다. 해미라는 말 자체가 또한 낯설었다. 가고싶은 여행지로 한적한 해미읍성의 성벽 사진을 신문을 통하여 겨우 알고 있었을 뿐이다. 해미읍이 어떠한 곳이기에 그 깊은 안목을 지닌 한창기님을 사로잡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다. 경관 때문인가, 특별한 인연 때문인가, 아니면 한창기님 개인이 가지고 있는 순수한 개인적인 성향일까를 말이다. 그러다가 곧 잊었다.

백제문화권은 주로 강원도 또는 동해안 쪽에 익숙하던 내게는 낯설다. 그래서 신비스러운 곳이기도 하다. 수원성을 한바퀴 돌면서 느낀 성곽에 대한 벅찬 감동도 좋았지만, 해미읍성에 대한 신비스러운 설레임은 분명 컸다. 그래서 가본 것이 두 번이다. 대천을 가다가 들렸을 때는 스쳐 지나며 얼굴만 익혔지만 일부러 거창한 답사 주제를 설정하여 방문하기에 이른 것이다. 개인의 답사는 사전 준비가 미약하다. 새롭고 낯선 곳을 찾아감에 사전 준비는 선입견을 줄 뿐이라 사양한다. 똑같은 장소를 찾았어도 서로 다른 목적으로 다가가면 그곳은 또 다른 장소가 되고 만다. 이것이 내가 지닌 조경 문화를 대하는 사고의 기본 틀이다.

해미읍성의 성벽은 하대 상소(下大上小)의 돌쌓기와 쐐기돌을 많이 끼운 수법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성벽 안쪽은 흙으로 내탁되었다. 내탁이란 평지에 성곽을 쌓을 때 안쪽에 흙을 쌓아 구축한 성벽으로 수원성도 마찬가지이다. 성(城)의 둘레에 탱자나무를 돌려 심었으므로 탱자성이라는 별칭이 있었지만 담쟁이덩굴이 성 바깥을 둘러싸고 있다. 처음 해미읍성을 방문하였을 때는 듬성듬성 감나무 몇 그루와 비어있는 성 안이 괴기스러울 정도로 고요하게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느낌을 가졌었다. 그런데 두 번째 방문에서는 새롭고 또 다른 느낌이 성벽을 따라 다가오는 것이다. 같은 목적으로 같은 장소를 다시 찾았는데 그 느낌은 또 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 느낌은 살찌는 것이다. 그러다가 풍요로움의 바닥에서 살을 빼며 새로운 느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해미읍성의 두 번째 방문이 그러했다. 비어있음에 대한 새로운 느낌이었다. 비어있다는 것을 살찌운 특정 관념이었던 것이다. 해미읍성 동헌 뒤 느티나무들이 역사를 지키고 있다. 뒷산 가장 높은 정자에서 물러 나와 성을 따라 한바퀴 도는 것으로 새로운 느낌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동문으로 향하는 동안에 지천에 널려있는 억새밭이 풍경을 돋우고 있었고, 산 아래로 기어오르다시피 식재된 대나무숲의 바람타는 소리가 사람을 긴장시킨다. 성벽 위로 성을 도는 동안 내 긴장은 어지러움 하나였다. 다리가 떨릴 정도였다. 어지러워 발끝보다는 멀리 시야를 들어 성안을 열심히 보게 된다. 성안은 어지러움이 감싸 놓은 비어있음으로 충만하였다. 내 발끝이 향하는 길은 어지러움을 따라 짐승처럼 후들거렸으나, 내 이성은 끝없이 비어있는 성안으로 "비어있음에 대하여" 생각의 속도처럼 달려갔다.

작은 성벽에서도 흔들렸던 나는 그다지 넓지 않은 해미읍성안의 비어있음을 넋없이 쳐다보기도 하였고, 높은 성벽에서 멀리 서해 바다를 바라보기도 하였으나 여전히 뿌리깊은나무의 발행인이었던 한창기선생님의 소원인 해미읍장에 대하여는 풀리지 않았다. 한 개인의 평생 소원을 어찌 쉽게 풀어낼 수 있겠냐마는 그 분에 대하여 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사고의 단초를 붙잡기가 어렵기만 하다. 왜 내가 그 이유를 밝히고 싶어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같은 시대를 호흡하신 분의 생각을 미루어 밝혀내는 것도 이처럼 벅차고 쉽지 않은데, 이미 지난 시대를 호흡하고 돌아가신 선조들의 생각을 미루어 밝혀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답사는 늘 그곳에서 먼저 사셨던 분들의 생활로 돌아가서 바라보아야 한다.

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살아 온 방식이 다르고 문화적 배경과 가치의 차이에서 오는 미명이 머리를 혼란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답사의 묘미가 있는지도 모른다. 알지 못하고 돌아올 때는 참으로 아득하다. 혼란스러워 궁금함이 가득 배어 돌아올 때는 그 길이 아무리 막혀도 지루하지 않다. 자꾸 눈을 감고 꿈을 꾸거나 과거를 떠올려보는 것이다. 어찌 알랴. 그 꿈에서 그 시대의 삶을 고스란히 얻어낼 수 있을지. 해미읍성은 한꺼번에 보여주지 않았다. 돌을 맞으며 쓰러져간 많은 천주교인들의 긴박한 숨소리조차 아직 내게 주지 않는다. 수원성과 해미읍성의 서로 다른 느낌까지, 성을 이루고 있는 돌의 뜰녹을 통하여 사고의 깊은 창고에 아직 미봉인 채 각인된다.

해미읍성은 내게 확연한 보여짐을 거부하였다. 나 역시 그렇게 확연함을 원하지 않았다. 멀지 않은 곳이다. 수원성과는 큰 차이가 나는 곳이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과제가 하나 남았다는 게 좋다. 이제는 남아 있는 과제 또한 문제되지 않는다. 풀리지 않는 단초가 있어 시작은 흥미로웠고, 시작은 그러하였지만 화살은 떠났다. 나는 그 시위에 올라타 있다. 해미읍성을 느끼기에 두 번은 미약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