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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休林山房

005. 시 낭송의 힘 '열고', '닫고'의 운율이 펼쳐내는 풍경

by 나무에게 2014. 5. 12.



005.시 낭송의 힘 '열고', '닫고'의 운율이 펼쳐내는 풍경 / 온형근

- 꽃피는 시절, 이성복 _ 5월7일 문학



이성복 시인의 '꽃피는 시절'이다.

멀리 있어도 나는 당신을 압니다 / 귀먹고 눈먼 당신은 추운 땅 속을 헤매다 / 누군가의 입가에서 잔잔한 웃음이 되려 하셨지요 // 부르지 않아도 당신은 옵니다 / 생각지 않아도, 꿈꾸지 않아도 당신은 옵니다 / 당신이 올 때면 먼발치 마른 흙더미도 고개를 듭니다 // 당신은 지금 내 안에 있습니다 / 당신은 나를 알지 못하고 / 나를 벗고 싶어 몸부림하지만 // 내게서 당신이 떠나갈 때면 / 내 목은 갈라지고 실핏줄 터지고 / 내 눈, 내 귀, 거덜난 몸뚱이 갈갈이 찢어지고 // 나는 울고 싶고, 웃고 싶고, 토하고 싶고 / 벌컥벌컥 물사발 들이키고 싶고 길길이 날뛰며 / 절편보다 희고 고운 당신을 잎잎이, 뱉아낼 테지만 // 부서지고 무너지며 당신을 보낼 일 아득합니다 / 굳은 살가죽에 불 댕길 일 막막합니다 / 불 탄 살가죽 뚫고 다시 태어날 일 꿈 같습니다 // 지금 당신은 내 안에 있지만 / 나는 당신을 어떻게 보내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조막만한 손으로 뻣센 내 가슴 쥐어 뜯으며 발 구르는 당신


목소리에 숨결이 실리는 일이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학창 시절의 국어 선생님이 떠올랐다. 꿈꾸듯 시와 글을 낭독하시면서 수업을 이끌었던 분이시다. 선생님이 꿈꾸듯 읽으시면 염원과 소망을 담아 따라 읽었다. 낭송은 몸이 하는 일이다. '동의보감'에 소리의 뿌리는 신장에 있고, 신장은 뼈를 만든다. 그래서 소리 훈련을 하면 신장과 뼈를 단단히 할 수있다고 한다. 오늘 선생님이 낭독한 '꽃피는 시절'은 적당히 나직하면서 톤은 성기고 두툼하다. 그러면서 정교한 탄력이 있고 기백과 찰기있는 기질이 배어나온다. 사람은 평상시의 말투와 낭송의 어조가 다르다. 아무리 사람 좋은 웃음으로 허허 대지만 낭송하는 순간 내면의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여느 세상에서의 소리로 공명한다. 그래서 낭송에는 힘이 실린다. 처음에 교과 선생님이 낭송하고, 전문가가 낭송한 파일을 틀어서 보여준다. 시가 함께 나오는 초보적 모션그래픽이다. 글씨가 크고 좀 더 잘 만들어진 모션그래픽이었으면 좋았겠다. 선생님은 2번의 낭송에 이어 학생과 함께 세 번째 낭송을 이룬다. 이때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하지 않는다. 1연에서 같이 하고 2연에서 선생님은 멈추고 학생들만 하고, 다시 중간에 선생님이 개입하면서 전체 낭송의 결을 유지하는 기법이 '열고', '닫고' 하는 수업의 묘미를 한끗 올려주는 낭독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된다.


학생의 몰입도가 한층 높아지는 가운데 

시를 분석한다. 시에 나오는 '당신'의 의미를 학생과의 문답학습으로 진행한다. 당신에 대한 다양한 학생의 발표를 정리하면서  칭찬하고 더 많은 의미를 전달하면서 시에 나오는 '나'와 '당신'의 의미를 돕는다. 각 연의 키워드를 정리하는데, 여기서 반복되는 시의 구절들은 점차 시어에서 논리로, 논리에서 감성으로, 감성에서 느낌으로, 한 개인의 시적 자아로 성숙되어진다. 문학 교과의 수업에는 리듬감이 고스란히 실려있다. 시에는 자연의 율려가 살아 꿈틀댄다. 분석은 분석일 뿐, 선생님의 분석 또한 기본적인 율동감으로 반복된다. 이제 수업에서 소통되는 모든 언어는 시적 분위기에 도달하여 음률을 탄다. 선생님은 '나'의 자리에 '줄기'를 넣어서 읽어보게도 하고 의미를 확장하여 꽃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로 넘기기도 한다. 문학 수업의 자리에는 의미 확장성이 매우 강하다. 4연에서는 장미꽃 피는 과정을 고속촬영으로 보여준 영상을 상기시킨다. 그러면서 학생활동으로 활동지를 나눠준다. 활동지는 본 수업에 사용된 시의 갈래와 성격, 주제, 화자와 청자, 태도, 특징 등을 정리하는 부분과 시의 내용과 의미를 파악하는 부분, '꽃피는 시절'의 의미를 파악하는 부분으로 구성되어 학생활동으로 주어졌다.


'나'와 '당신'의 의미망을 계속 연결

시키는 학습 방법이 4연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어쩌면 4연까지만 수업하고 학생활동지 발표 등의 다양한 피드백 수업으로 수업의 층을 두텁게 하였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1시간에 소화시킬 수 있는 분량이긴 했다. 학습에 열정적인 그룹일 경우 매우 바람직한 분량이고 수업 형태 역시 나무랄 데 없는 교수학습방법이다. 그러나  점점 끈기가 약해지는 학생들이다. 결국 마무리까지 가는 데 지나친 분량이었다. 마무리에서 급해지고, 학습 정리를 학생들의 활발한 참여로 이루지 못하고 선생님이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설명하느라 쉬운 예를 많이 들고 학생에게 학습내용을 환기시키려는 반복된 참여 유도는, 선생님의 수업에 대한 평소의 열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단초가 되었다. 꽃피는 영상, 낭독의 개별성, 수업 전개 방식의 '열고', '닫고'의 조화로운 어울림이 돋보인다. 학생들의 학습 참여 활동을 권장하는 수업 트랜드이지만, 시를 공부하는 단원에서의 낭독의 반복된 수업 디자인은 여전히 고전적이면서 유익하다. 고전은 클래식하다는 생각이 수업 내내 떠나지 않았다. 나의 학창시절 국어 시간의 선생님의 열정이 오늘 수업 공개하신 선생님의 열정과 고스란히 오버랩되는 이 지독한 경험의 학습은 어찌 설명해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