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본색(本色) / 정희성
누가 듣기 좋은 말을 한답시고 저런 학 같은 시인하고 살면 사는 게 다
시가 아니겠냐고 이 말 듣고 속이 불편해진 마누라가 그 자리에서 내색은
못하고 집에 돌아와 혼자 구시렁거리는데 학 좋아하네 지가 살아봤냐고
학은 무슨 학 닭이다 닭 닭 중에도 오골계(烏骨鷄)!
2007년 겨울호 "창작과 비평"[창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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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봐야 아는 일이 많다. 그런데 겪어봐야 아는 이런 철부지를 흉보는 심사 또한 즐비하다. '학은 무슨 학 닭이다 닭'의 이미지를 싫어도 내색하지 않는다. 사실 그렇다. 학이 되려고 한 적이 없지만 닭이 되려고 한 적도 없다. 서툴고 우둔하여 속살이 찌지 않은 가벼운 처사 투성이다. 손금을 보듯 뻔한 게 내 투명한 속셈이다. 가볍디 가벼워 막일꾼처럼 보이는 게 모색의 실체다. 그러니 앞에서 말을 못할 뿐 돌아서면 숱하게 궁시럭 대거나 히득거리며 좋아할 인물이다. 써 먹기 참 좋은 놈일테다. 묵직하지, 지가 아플지언정 대들지 않지, 가끔 울렁거리는 비위만 조율해주면 만사형통이지, 옆구리 슬쩍 찌르면 정의로워 물불을 가리지 않지, 대체 억조창생 마른 장작으로 두들겨야 불길만 거세질 뿐이다. 본색은 무슨 본색, 겉조차 제대로 세워다닐 수 없는 유리알이다. (2007. 12. 03. 온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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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주택관리신문, 2009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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