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년 / 천양희
작년의 낙엽들 벌써 거름 되었다
내가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을 뿐인데
작년의 씨앗들 벌써 꽃 되었다
내가 꽃밭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인데
후딱, 1년이 지나갔다
돌아서서 나는
고개를 팍, 꺾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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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서서 나는 고개를 팍, 꺾었다' 꺾이지 않고 살기에는 뒷목이 너무 뻣뻣하다. 혈압이 높아질 때쯤 일어나 작년의 먼지들을 쓰다듬는다. 내가 지나왔을 뿐인데 그 먼지들은 도처에서 기를 쓰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냥 살아내고 있었을 뿐인데 안아달라고 먼지 펄펄 날리고 있다. 나무 심을 때 어떻게 심을 것인가 조금 궁리를 했을 뿐인데 겨울 바람을 이겨내고 새봄 싹을 틔우려 튕겨 나온 겨울눈이 튼실하다. 1 년을 살아내는 게 봄을 기다리는 두려움으로 시작되고, 그 두려움으로 첫 삽질을 하다 보면 어느새 또 1 년이 후딱 지나가고 만다. 세월은 그렇게 꺾여가고 있다. 초등학교 모임에 갔더니 여전히 웃기는 만담의 친구는 '인생 뭐 있어!'로 처음부터 끝까지 들이댄다. 맞다. '1 년 뭐 있어!'다. 봄이 두렵지만, 맞이하고 나서는 곧 잊히고 마는 걸 뭐. 1 년 뭐 있어! (2008. 02. 25. 온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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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호 한국주택관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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