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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達茶會

길들여진다는 것

by 나무에게 2017. 3. 28.

차 한 잔 축인다. 여전히 돌고 돌아도 황차로 오면 더 반갑다. 내 6번째 시집 '천년의 숲에 서 있었네'에 <공진화-구기자나무>란 시가 그랬다. 구기자나무 잎을 훑어내면서 가시와 신경을 날카롭게 다뤘는데, 이때 가시의 방향과 결을 느꼈고, 공진화라는 인류의 위대한 깨달음에 전율하였다. 개념을 아는 것과 일을 통해서 그 개념의 겨드랑이까지 날 것으로 만난다는 게 그래서 지극한 행복이다. 황차 역시 내게는 길들여짐의 또 다른 개체이다.


<길들여진다는 건 얼마나 긴 세월일까 바람부는 방향으로 늘어져 흔들리다 땅 냄새 맡으면 그 자리에 뿌리내리고 길들여지는 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잔뜩 푸른 엽록소의 즙액이 유전자 지문 사이를 메운다 온몸이 바람 부는대로 휘청거린다.

온형근 시집, 천년의 숲에 서 있었네, '공진화-구기자나무'의 일부>
그렇게 오래된 이야기 하나를 집어냈다. 어느날 구기자나무 잎을 덖어서 차를 만들어 보려했던 어느 단편이다. 차 맛은 추천하고 싶지 않았고, 가시와의 신경 날카롭던 순간의 몰입에 대하여는 기억 새롭다. 모든 기호도 길들여짐이다. 그러니 길들여짐에 반발하는 내적 성숙의 목소리 또한 시들지 않는다. 땅 냄새에 멈추고 바람 부는대로 휘청이며 살지만 잊지 않고 의심하고 끝까지 되묻는다. 그러니 공진화의 세월은 까마득하다. 길들여지는 것 또한 그러하다. 스스로도 모르게 그리 되어진다. 인식이나 파악 또는 분석류와는 다르다. 어느 순간 길들여져 있는 자신을 만난다. 여전히 까칠하면서도 길들여져 있는 모순의 현재를 살고 있다. 황차를 마시면서 이 길들여짐은 뭘까를 끊임없이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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