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시의 풍경을 거닐다

레기스탄의 염주비둘기

나무에게 2024. 10. 20.

 

레기스탄의 염주비둘기

온형근

 

 

 

레기스탄 숲 속에서 염주비둘기

멀고 느리다.

아주 천천히 길고 낮게 늘어지면서

'열중쉬어'

 

조원동 원림의 멧비둘기처럼 바쁘게 다그치며 

구슬프거나 공기의 진동에 슬픔의 가락을 수놓는

'전체차렷'은 아니다.

 

둘은 멀거나 가깝다.

 

새벽에 베란다 문을 활짝 열어두면

기다렸다는 듯 유럽칼새와 염주비둘기가

침대 모서리까지 와서 지저귄다.

 

가끔은 충직한 그리스인들의 마라칸다를 건너

사마라칸트의 고적을 지켜내는 소리란 이런 거라고

경주 동궁과 월지에서 들었던 멧비둘기 소리처럼

묵직하다는 건 멀고 다가서는 건 느리다.

 

그렇다면 멧비둘기 초정밀 정교한 금박은

사마르칸트 염주비둘기와 경주 멧비둘기가 서로

향수를 건드리는 암호로 위안을 나누었던 

먼 그리움이 느리게 이녁을 넘나드는 전언이다.

 

창작 메모

그리스인들은 당시 사마르칸트 지역을 마라칸다라 불렀다. '구당서'에는 이 지역의 도시국가를 康國이라 부르며 왕의 성씨는 溫이라 기록하였다. 6세기 경의 고구려의 온달은 아버지 나라를 그리워 멧비둘기처럼 울었을까. 레기스탄의 염주비둘기처럼 멀고 느리게 답하였던 아버지를 향하여 말을 타고 달렸다. 그곳이 어디든 귀소의 염원은 커서 나아감에 거추장스러움은 없다.

'::신작시:: > 시의 풍경을 거닐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옥정 협곡에 머물다  (0) 2024.10.20
만대루 비취 산빛  (0) 2024.10.20
소쇄원 멧비둘기  (0) 2024.10.20
시새워 무엇하리오  (0) 2024.10.20
그 잠깐이 황홀하여  (0) 2024.10.2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