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온형근
머리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그리 밝게 지즐대듯 말하곤 밥 한 번
먹자고 익숙하게 이승의 그 흔한 약조를
수제비 국물 한 술 후루룩 삼키더니
그제는 전화를 안 받고 어제는 문자에 노란색 '1'이 아직도 잉크 채 선명하다.
아무래도 이제는 수소문하기도 무섭다.
그이는 먼저 간 언니가 재촉했을까
맨발로 뛰어나와 만면에 웃음 환하던
자매의 가을 하늘처럼 맑은 문지방 풍경
고개 들어 저 언덕을 향하는 나를 놓쳐버린다.
시작 메모
「아무래도」라는 제목은 낯설다. 불안과 그리움을 담았다. "머리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은 긴장과 두려움의 표현이다. 일상의 사소한 대화에서 느끼는 불확실함이다. "밥 한 번 먹자"라는 말은 얼마나 수두룩한 익숙함인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원초적 삶의 갈망이다. 이승의 흔한 약속이지만, 그리움의 무게를 더했다. 말하기 어려운 상황을 수제비 국물 한 숟가락 먹듯 쉽게 한다. 삶의 격정을 내려 놓는 심정을 수제비 한 술 후루룩 삼키듯 막힘없는 천진무애한 어투로 표현한다.
소식이 끊기면 불안감은 커진다. "그제는 전화를 안 받고 어제는 문자에 노란색 '1'이 아직도 잉크 채 선명"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걱정이 깊어진다. 다가서는 현실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진다. "아무래도 이제는 수소문하기도 무섭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찾는다는 행위 자체가 두려워진다. 소식이 끊어진 순간, 두려움의 감정이 사방에 넘실댄다. 아무래도, 아무래도, 아무래도...,
"그이는 먼저 간 언니가 재촉"한 것이라는 질문은 '아무래도'를 뒷받침한다. "맨발로 뛰어나와 만면에 웃음 환하던 자매의 가을 하늘처럼 맑은 문지방 풍경"을 떠올린다. 과거의 행복한 순간이다. 그리움은 항상 따뜻한 감정을 소환한다. "고개 들어 저 언덕을 향하는 나를 놓쳐버"리는 불안과 그리움이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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