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시의 풍경을 거닐다

문경새재 교귀정

나무에게 2024. 11. 17.

문경새재 교귀정

온형근

 

 

 

   교귀정交龜亭 가을 단풍 주흘산 치맛자락에 감기고

   작은 단에서 큰 단으로 쏟아지는 용추의 기개

   여울을 에워싼 새재의 골짝을 들었다 놓았다

   우렁찬 소리마다 단 사이를 뛰어넘는 건각

   낙엽은 무슨 연유로 급한 여울로 꽂히는지

   교귀정 앳된 풍광을 수직의 우렛소리로 재운다.

   시샘은 또 하나의 숨겨 둔 심보에 깃든다는데

   외양으론 노장을 들앉힌 달관의 깨우침이건만

   꼬질꼬질 꼬부쳐 둔 빈정댐은 용추정 자리, 사라진 그의 몫

   교귀정 난간에 걸터앉아 교환하는 산수의 눈길은

   천년을 떠다니는 문경새재의 흰구름으로 새긴 바위글씨

   용추龍湫, 잘 달군 인두로 지진 빠른 행서처럼 의연해

   울적한 시국을 깊고 둔탁한 울림으로 씻는다.

   구질구질 잔치레 같은 삿됨도 소용돌이에 씻긴다.

 

시작 메모

가을 저녁, 문경새재의 교귀정에 앉아 생명의 흐름에 빠져든다. 주흘산의 치맛자락에 감긴 단풍은 화려한 색으로 세상을 물들인다. 용추의 기세가 작은 단에서 큰 단으로 쏟아지는 모습은 마치 누적되는 세월의 힘이 느껴지는 듯하다. 여울을 에워싼 골짝은 소리와 함께 장엄하다. 우렁찬 소리는 나의 마음을 뛰게 한다.

낙엽이 급한 여울로 꽂히는 모습은 가을의 쓸쓸함을 드러낸다. 교귀정의 앳된 풍광은 우렛소리와 함께 감흥을 자극한다. 시샘은 숨겨둔 마음속의 갈등을 드러낸다. 외양은 노장의 깨우침처럼 보인다. 빈정댐은 사라진다. 문경새재의 품에서 위안을 찾는다.

교귀정 난간에 걸터앉아 천년을 떠도는 문경새재의 흰구름을 바라본다. 바위에 새겨진 '용추'라는 글씨는 마치 시간의 흔적처럼 의연하다. 울적한 시국 속에서도 그 깊고 둔탁한 울림이 좋다. 잔잔한 여운 속에 모든 것이 소용돌이처럼 씻겨 나간다.

이 순간, 생명의 흐름과 하나가 되는 경험은 깊은 감흥을 준다. 고요한 숲속의 소리와 색감이 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잊혀진 기억을 떠올린다. 모든 것은 영원하다. 가을의 정취가 깊어간다. 문경새재의 풍경은 나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연연함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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