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시의 풍경을 거닐다

호텔 디요르의 붉은물푸레나무

나무에게 2024. 10. 21.

 

호텔 디요르의 붉은물푸레나무

온형근

 

 

 

앉았으나 꼼짝달싹 없이 중앙아시아 울퉁불퉁

잘 생긴 근육질 산맥 위를 유영한다.

설산의 신비를 머금은 커다란 호수에서

언젠가 한 줌의 재로 머금을 날 있음을 천명으로

광활하게 걸터앉은 계곡 사이로 마을의 꿈 여문다.

 

늦은 귀가처럼 깨우는 유월의 재잘거림은

녹음 속에서 우짖는 염주비둘기와 유럽칼새의 몫

밤과 아침을 드리우며 지켜 낸 엄중함은

마로니에를 아래뻘로 거느린 붉은물푸레나무의 그늘

 

이제 눈인사하니 숲의 넉넉하고 묵직한 화답

무더운 낮시간의 기나긴 대열을 응달져 잊게 한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빛은 오랜 시간의 침묵

저 멀리 산맥의 속삭임이 내 안의 세계를 깨운다.

 

(다시올문학 2024 가을호, 통권60호)

 

창작 메모

실크로드를 걷진 못하였지만, 하늘에서의 풍광은 장엄하다. 울퉁불퉁한 산맥은 그림처럼 날렵하고 선명한 골을 만든다. 설산과 호수, 계곡의 펼쳐짐에 한참 꽂힌다. 대체 어느 곳에 머물러야 저 광활한 자연을 만끽할까. 계절의 변화와 새소리의 재잘거림은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 사는 숲은 그늘을 안기고 위안을 얻는다. 유월의 재잘거림이 있어서 숲은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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