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5 느티나무 군집 느티나무 군집 온형근 느티나무 군집이 뿜어내는 기운이 있다. 느티나무 군집은 사람을 모은다. 시공간을 아우르는 위안이다. 계절마다 뿜는 분위기도 다르다. 한여름 그늘에서 겨울나무의 진면목으로늠름하여 계절의 구별을 꺾는다. 쪼그려 앉아 쉴 때, 나도 저 품안에서 위안이다. 겨울 가지 사이로 희끗희끗 밝은 불빛이 파르르 떤다. 내가 느티나무 씨를 뿌려 길렀으니 그들이 한창 사유의 지평을 깊고 푸르게 펼친다. 느티나무 씨앗, 들깨 한 알 크기가 우주를 넉넉하게 품었다. 고독한 혼자였을 세월이 있어 장년의 늠름함이 의젓하다. 그러니 어쩌랴, 여전히 혼자 골몰하며 아닌 척 의연하다. 느티나무는 아무리 보아도 뭣인양 진지하여 삼엄한 것은 선천적으로 기질에 맞지 않고 뭣이 아니라 손사레치는 것은 남사스.. ::신작시::/온전한 숨 :: 나무 詩 2024. 12. 31. 낙엽이 길을 따라 흐르는 것은 낙엽이 길을 따라 흐르는 것은 온형근 낙엽이 길을 따라 흐르는 것은바람이 퍼질러 주저앉고자끝이 없는 먼 길을 타고 흐르고자 하는 욕망가을이 반짝거리며 속셈 없이 털어내던 잎 몇 개 매달린 가로수들의 수런거림찬바람 사람이 걷지 않는 길에는낙엽만 길을 따라 흐르며 두런댄다걷고 있는 이 길을 따라 사라지고 말면텅 비어 바람을 맞이할 수 없는 것을바람이 부는지 낙엽이 흐르는지볼이 찬지 두터운지 못내 아쉬워 자꾸걷다가 되돌아보는 길 위로길을 따라 쓸리듯 흐르는 바람 앞에사람의 흔적 비어 썰렁한 낙엽긴 밤길 걷다 맞이하는 새벽Leaves flowing along the road Ohn Hyung-geun Leaves flowing along the road The wind sprawling, wanting.. ::시집::/풍경의분별 2013. 12. 26. 자화상 자화상온형근 먼지 풀풀 날리는 길혼자 등을 보이며 걷는다그가 누구일까를 생각해 보지 않았다그의 등뒤로 먼지가 포물선을 긋는다한참 지나면 길보다 뒷모습이 더 커져 있다어디를 가는 중인지 궁금해하지 않았다꽤 오랜 시간 동안 길과 뒷모습은정지화면으로 움직이고꽤 오랜 시간 동안 길과 뒷모습은낯익은 동작으로 바뀌어 있다어디를 바쁘게무엇 때문에 휘젓고어찌하여 걷는가허튼 먼지를 풀풀 날리며Self-portrait Ohn Hyung-geun A dusty road Walking alone with his back turned Never thought about who he might be Dust arcs behind his back After a while, his back becomes larger tha.. ::시집::/슬픔이라는이름의성역 2013. 12. 26. 밤 숲길 ─화전.66 밤 숲길 - 화전.66온형근 밤 숲길로 휘영청 달빛이 잠들지 못해 떠도는 중생혼이다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산에서 산을 닮으려하나 밤길을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 다만 달빛을 닮아있는 젖은 가슴만이 있을 뿐 산마을 초상집의 사람내음새가 산자락에 퍼져있다 다시 쌓이는 생활의 편린들이 다 좋다 밤 숲길의 온갖 생각이 무섭다 금방이라도 뛰어 내려가 저자 거리에서 사람을 만나고 싶다 밤 숲길은 나설 것이 못된다 아침이면 다 허황하여 큰 숨으로 산자락 가득한 중생혼과 속마음을 나눈다 또 다른 하루가 화전에 가득하다 화전의 영혼 가득하여 침묵할 수밖에달빛 비치는 밤길을 만나지 않는다면 밭일에 지쳐코 골고 누울 수 있다 삶을 광주리에 담는 넋만으로지닌 것 없다고 손을 펼 수 있겠다Night Forest Path - .. ::시집::/연작시::화전 2013. 12. 26. 슬픔 ─화전.65 슬픔 - 화전.65온형근 살아있다고 외치는 나무와 풀싹들이 슬퍼 보인다새를 담고 있는 둥지까지 죄다 슬퍼 보인다 입 안 가득 슬픔을 씹고 있다 머물다 사라질 슬픔이 아닌 살아있다는 것에 슬픔이 매겨져 있다 바람은 없다 산천에 남아 쓸쓸하게 표류하는 것들은 흔들리지 않게끔설계되었다 그러나 내 눈에는 모든 게 흔들리고 있다삶을 바라보면서 우울이 짙은 날은 쳐다볼 게 없다보이는 것들 한 가지도 남지 않은 채 거칠고 슬프다사립문 밖에는 시키지도 않은 냇물이 곡을 이루며 흐른다 지난 여름에 턱없이 달려들어 아꼈던 냇물이다발을 담그기도 벅찬 냇물 앞에 서 본다같은 종족의 목소리가 몹시 그립다 싶은 산천에 새소리 바람소리 귀신소리 가득하다 그리운 얼굴 하나가 반긴다 간질거리며 웃던 세월이 녹아 있다Sadness -.. ::시집::/연작시::화전 2013. 12. 26.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