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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정희성, 시인 본색(本色) 시인 본색(本色) / 정희성 누가 듣기 좋은 말을 한답시고 저런 학 같은 시인하고 살면 사는 게 다 시가 아니겠냐고 이 말 듣고 속이 불편해진 마누라가 그 자리에서 내색은 못하고 집에 돌아와 혼자 구시렁거리는데 학 좋아하네 지가 살아봤냐고 학은 무슨 학 닭이다 닭 닭 중에도 오골계(.. 2013. 12. 23.
071-유현서, 감자 캐는 날 감자 캐는 날 / 유현서 고자리 먹기 전에 서둘러라 널찍이 떨어져 호미를 들어라 찍히거나 끊기면 안 된다 이젠 들을 수 없는 소리 들리지 않는 소리들을 들쳐 업은 옥수숫대가 감자밭 저쪽에서 슬며시 내려놓는다 네 살 박이를 떼어놓고 간 어미 혼자 쭈그리고 앉아 연신 감자를 낳는다 .. 2013. 12. 23.
070-서안나, 새의 팔만대장경 새의 팔만대장경 / 서안나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경판은 무르나 단단했다 나무를 바닷물과 뻘밭에 묻어 결을 달랜다고 했다 나무의 습성을 내려놓는 치목(治木)의 시간이라 했다 겨울 천수만의 새들도 부드러우나 단단했다 뻘밭에 고개를 박는 새에게서도 산벚나무 냄새가 났다 주.. 2013. 12. 23.
069-신경림, 파장 파장 / 신경림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깍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켜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빚 얘기 약장수 기타소리에 발장단을 치다 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어디를 들어가 섰다라도 .. 2013. 12. 23.
068-간복균, 나이 들면 이렇게 삽시다 나이 들면 이렇게 삽시다 / 간복균 수필작가 자연을 산책하며 먼 산을 바라봅시다. 이성으로 욕심으로 오기부리지 말고 자연한 이치로 退行 되어 가는 육체에 순리대로 따라 순응하며 이렇게 살아갑시다. 나이 들어 잘 안 보이는 것은 큰 것만 보고 살라는 것입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 2013. 12. 23.
067-장석주, 달의 뒤편 달의 뒤편 / 장석주 그믐밤이다. 소쩍새가 운다. 사람이건 축생이건 산 것들은 사는 동안 울 일을 만나 저렇게 자주 운다. 낮엔 상가(喪家)를 다녀왔는데 산 자들이 내는 울음소리가 풍년이었다. 무뚝뚝한 것들은 절대 울지 않는다. 앞이 막혀 나갈 데가 없는 자리에서 ‘죽음 !’이라고 나.. 2013. 12. 23.
066-김연대, 기다리는 사람에게 기다리는 사람에게 / 김연대 기다리는 사람아 내게서 마무 소식 없거든 내가 돈 버느라고 좀 많이 바쁜 줄 알아라 삐삐를 치고 휴대폰을 쳐도 내게 아무 소식 없거든 내가 벌어들인 돈 날리느라고 아주 많이 바쁜 줄 알아라 눈 오는 밤 대문을 열어 놓고 기다려도 내 소식 없거든 내가 날.. 2013. 12. 23.
065-심봉원, 마음쓰는 분량 명종 때의 명신 沈逢原은 명신으로보다 心養,즉 마음을 기르는 선인으로 더 알려졌다. 太華山 기슭에 집을 짓고 曉窓老人으로 불리며 하얀 수염을 날리고 산수 속에서 여생을 살았는데, 그의 생활태도가 특이하였다 한다. 옷은 반드시 무게를 달아 무겁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게 지어 입.. 2013. 12. 23.
064-안현미, 하시시 하시시 / 안현미 바람이 분다 양귀비가 꽃피는 그녀의 옥탑방 검은 구두를 신은 경철이 어제, 다녀갔다 하시시 웃고 있는 여자 환각을 체포할 수 있는 영장은? 검은 구두를 신은 경찰이 오늘, 다녀갔다 사랑은 떠나지 않아도 사내는 떠났다 하시시 울고 있는 여자 검은 구두를 신은 경찰이.. 2013. 12. 23.
063-이재무, 깊은 눈 깊은 눈 / 이재무 마을 회관 한 구석 고물상 기다리며 한 마리 늙고 지친 짐승처럼 쭈그려 앉은, 흙에서 멀어진 적막과 폐허를 본다 젊어 한 때 쟁기가 되어 수만 평의 논 갈아엎을 때마다 무논 젖은 흙들은 찰랑찰랑 얼마나 진저리치며 환희에 들떠 바르르 떨어댔던가 흙에 생 담궈야 더.. 2013. 12. 23.
062-김종미, 숨바꼭질 숨바꼭질 / 김종미 나는 찾고 너는 숨고,혹은 너는 찾고 나는 숨고 그런데 그 간단한 게임이 잘 풀리지 않는다구 나는 몇 개의 나를 가지고 있고 너는 또 몇개의 너를 가지고 있으니까 우리는 날마다 더욱더 신중해지지 않으면 안되거든 게다가 우리의 놀이터는 굉장히 복잡한 구조라서 .. 2013. 12. 23.
061-안상학, 나무가 햇살에게 나무가 햇살에게 / 안상학 바람 타는 나무가 더러 운다고 해서 사랑이 흔들리는 것은 아니리 그 어느 바람에도 뿌리째 흔들리지 않았고 그 어느 눈보라에도 속까지 젖지는 않았으니 구름 타는 햇살이라 더러 울기야 하겠지만 나에게 이르는 길을 몰라서가 아니리 그 어느 바람에도 날리.. 2013. 12. 23.
060-이선영, 헐렁한 옷 헐렁한 옷 / 이선영 세상에 널린 여러 옷들 속에서 나는 주로 헐렁한 옷을 골라 입는다 그것은 내가 헐렁한 옷속에 나를 감춰두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나는, 맘껏 드러내놓고 싶은 만큼이나 친친 감아놓고 싶은 어줍짢음이다 헐렁한 옷 속으로 내가 나를 슬쩍 밀어넣으면 나는 옷.. 2013. 12. 23.
059-이승희, 그리운 그대 그리운 그대 / 이승희 내게 걸어올 때 그대 몸에선 오래된 목조 계단을 지날 때처럼 삐걱 이는 소리가 들렸다. 상처가 그대 발목에 걸려 있기 때문일까? 그런 날이면 난 그 삐걱임 속 어디쯤으로 내 몸을 뉘여야 하는지 몰라 밤 새 앓았다. 한 귀퉁이가 이미 오래 전에 떨어진 듯한 그대의 .. 2013. 12. 23.
058-이승희, 그리운 그대.2 그리운 그대·2 / 이승희 낮에는 보이지 않던 길이 밤이면 먼 별빛으로 보일 때가 있다. 그런 적이 있다 정신없이 걷다 뒤돌아 보니 지나온 길이 없을 때, 난 어디 를 걷고 있었던 것일까. 살다 보면 길없는 길에 서 있기도 하는 것일 까? 그러나 이미 그때는 오도가도 못하는 삶이 있을 뿐.. 2013. 12. 23.
057-이승희, 그리운 그대.3 그리운 그대·3 / 이승희 한낮의 봄 햇살은 참혹했습니다. 그 거리에 서서 나는 주머니 속의 성냥갑을 만지작거립니다. 다시 불 켤 수 없을 것 같은 날들이 거기 있었습니다. 다시는 집짓지 않으리라 그냥 둥둥 떠서 한세상 살아가 리니, 서러운 것들은 가라고 연필심에 침발라 쓰듯 가슴.. 2013. 12. 23.
056-박이화, 고전적인 봄밤 고전적인 봄밤 / 박이화 송도 기생 황진이의 사생활은 만고의 고전인데 신인가수 백모양의 사생활은 왜 통속이고 지랄이야. 내가 보긴 황진이는 불륜이고 백모양은 연애인데 그렇거나 말거나 나는 가을밤 황국같은 황진이도 좋고 봄밤의 백합같은 백모양도 좋은데 좋기만 한데 왜! 이 시.. 2013. 12. 23.
055-박이화, 나의 포르노그라피 나의 포로노그라피 / 박이화 썩은 사과가 맛있는 것은 이미 벌레가 그 몸에 길을 내었기 때문이다 뼈도 마디도 없는 그것이 혼신을 다해 그 몸을 더듬고, 부딪고, 미끌리며 길을 낼 동안 이미 사과는 수천 번의 자지러지는 절정을 거쳤던 거다 그렇게 처얼철 넘치는 당도를 주체하지 못해 .. 2013. 12. 23.
054-황희순, 가슴에 난 길 가슴에 난 길 / 황희순 바람은 소리가 없다 누군가 만났을 때 비로소 소리가 된다 소나무를 만나면 솔바람 소리가 되고 풍경을 만나면 풍경 소리가 된다 큰 구멍을 만나면 큰 소리가 되고 작은 구멍을 만나면 작은 소리가 된다 아이가 찢고 나간 내 가슴은 바람이 없어도 소리가 난다 그곳.. 2013. 12. 23.
053-이인평, 안개의 섬―詩畵 스케치.9 안개의 섬 ―詩畵 스케치.9 / 이인평 안개에 덮여 앞이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늘 자신의 모습뿐이었다 세월이 안개 속을 흘렀다. 안개 속에서 사람들의 얼굴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했다 섬엔 안개가 맑게 걷히는 일은 거의 없고 날마다 파도소리가 들려왔다 가끔 태풍이 불어오고 풍.. 2013. 12. 23.
052-반칠환, 은행나무 부부 은행나무 부부 / 반칠환 십 리를 사이에 둔 저 은행나무 부부는 금슬이 좋다 삼백년 동안 허운 옷자락 한 번 만져보지 못했지만 해마다 두 섬 자식이 열렸다 언제부턴가 까치가 지은 삭정이 우체통 하나씩 가슴에 품으니 가을마다 발치께 쏟아놓는 노란 엽서가 수천 통 편지를 훔쳐 읽던 .. 2013. 12. 23.
051-서영처, 낡은 책을 읽다 낡은 책을 읽다 / 서영처 아버지는 책과 노트를 마당귀로 끌어냈다 시루떡처럼 쌓였던 책들이 떡고물 먼지를 흘렸다 책무더기에 기름을 끼얹었다 불길 속에서 활자들 타작마당의 콩처럼 튕겨나왔다 똘스또이와 끼에르케골, 루터와 칼빈이 탔다 개기일식인양 불의 혀에 둘러싸여 웅크린 .. 2013. 12. 23.
050-최한결, 방화수류정(암향을 찾아서.13) 암향을 찾아서.13 -방화수류정 최한결 용머리 바위 위에 살포시 접고 않은 부용처럼 떠오른 우아한 그 자태를 용연龍淵도 물거울에 달아 보란 듯이 내민다 최한결, 얌향을 찾아서, 오늘의 문학 ---------------- 방화수류정은 자주 찾는 공간이다. 수원 화성에서 단연 돋보이는 빼어난 경관이.. 2013. 12. 23.
049-손세실리아, 늙은 호박 늙은 호박 /손세실리아 나이 들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다고 벽에 똥칠하기 전에 어서 가야 한다고 말끝 흐리시는 친정어머니 열세 평 영구 임대아파트 칠 갈라터진 옥색 문갑 위에 경비실 황영감이 따다 준 늙은, 호박 한 덩이 펑퍼짐히 앉아 있다 순금 같은 풍채 놀랍도록 당당하다 참, .. 2013. 12. 23.
048-도종환, 별들의 휴가 별들의 휴가 /도종환 며칠째 눈이 내리다 그친 보름날 밤 구름 사이로 보이는 달과 별 몇 개만 빈 하늘을 지키고 그 많던 별들이 어디로 갔 는지 보이지 않기에 문 열고 나왔더니 별들이 마당에 감자밭 에 산기슭에 수없이 내려와 반짝이고 있습니다 며칠 동안 내 린 눈을 따라 여기까지 내.. 2013. 12. 23.
047-도종환, 산경 산경 /도종환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산도 똑같이 아무 말을 안 했다 말없이 산 옆에 있는 게 싫지 않았다 산도 내가 있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하늘은 하루 종일 티 없이 맑았다 가끔 구름이 떠오고 새 날아왔지만 잠시 머물다 곧 지나가버렸다 내게 온 꽃잎과 바람도 잠시 머물다 갔.. 2013. 12. 23.
046-문태준, 뻘 같은 그리움 뻘 같은 그리움/ 문태준 그립다는 것은 당신이 조개처럼 아주 천천히 뻘흙을 토해내고 있다는 말 그립다는 것은 당신이 언젠가 돌로 풀을 눌러놓았더는 얘기 그 풀들이 돌을 슬쩍슬쩍 밀어 놀리고 있다는 얘기 풀들이 물컹물컹하게 자라나고 있다는 얘기 ------------------------------------ '슬.. 2013. 12. 23.
045-전경린, 붉은 리본 누워서는 보이더니 바로 앉으면 보이지 않는 까만 씨앗 오랜만에 전경린을 대한다. 염소......로 만났을 때만해도 그는 내게 신선함의 전부였다. 산문집, 붉은 리본은 더운 여름을 식혀달라는 생각으로 집어 든 책이다. 그러나 시덥지 않았다. 덥고 짜증난다. 그러다 의자를 바짝 당겨 주는.. 2013. 12. 23.
044-유용주, 중견中犬 중견(中犬) (시, 유용주) 집안 내력은 들먹일 필요도 없지만 성질 또한 괴팍해서 고혈압, 고지혈증에다 신경성 위장장애를 거쳐 식도궤양 까지 각종 성인병을 쓰러진 술병처럼 달고 다니면서 독한 약은 우선 견뎌내기도 힘들고 식구들 폐 끼치기 싫어 담배와 술 먼저 줄이고 새벽에는 운.. 2013. 12. 23.
043-다이어트 보고서 엘지는 결론-이유-경과의 순으로 작성하라 한다. 미사여구, 추상적 표현은 지양하고, 가능한 한 도표나 그래프를 사용하며, 사실과 의견, 생각, 정보를 구분하라 권고한다. 이용갑 소장은 '현문종세미'의 원칙을 내세운다. 현상을 파악하고, 문제를 정의하고, 종류별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2013. 12. 23.